"사학 정체성 바꿔서는 안돼"

학내 문제로 10년 동안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됐던 상지대학교 이사회가 김문기 전 이사장의 의견을 듣지 않고 정식이사를 선임한 것은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2003년 12월 선임된 정식이사회는 이날로 자격을 상실,상지대가 다시 비상 사태에 처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황식 대법관)는 17일 김 전 이사장이 이 학교를 상대로 낸 이사선임 무효 확인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임시이사(관선이사) 선임 전에 이미 사임하거나 임기가 만료된 이사라 할지라도 선임결의의 하자를 다툴 법률상의 이익이 있으며,임시이사는 위기관리자이므로 정식이사를 선임할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비리를 저지른 학교법인의 임원에 대해 그에 합당한 민ㆍ형사상 책임을 묻고 행정적 제재를 부과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함부로 학교법인의 정체성까지 뒤바꾸는 단계에 이르면 위헌적 상태를 초래해 허용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비록 구 사학법에 대한 판단이지만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심리 중인 개정 사학법 헌법소원 사건과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있는 사학법 개정안 중 '임시이사'와 관련된 부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의 조치와 관련,교육부 측은 "개정된 사립학교법에 따라 교육부가 임시이사회를 구성하거나 정식이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며 "대법원의 판결문을 검토한 후 정식이사회를 선임할지 등을 최종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상지대는 1992년 한약재료학과 폐지 및 전임강사 임용 탈락 문제로 학내 분규가 발생하고 이듬해 4월 김 전 이사장이 부정 입학 관련 금품수수 혐의로 구속되면서 임시이사 체제에 들어갔다.

10년여간의 관리체제로 학교가 정상화됐다고 판단한 임시이사들이 교육부의 동의를 얻어 2003년 12월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 등 9명의 정이사를 임명하자 김 전 이사장이 이듬해 1월 이사회 결의 무효확인 청구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현재 임시이사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12개 대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임시이사 체제를 구 재단 이사들과의 협의 없이 정이사 체제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김 전 이사장이 승소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되찾을지 여부는 미지수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김 전 이사장 등 구 이사들이 정식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권한이 되살아난다고는 볼 수 없다"며 "학교 정상화 방법은 정상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유효한 사학법과 민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일반 원칙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25조3항으로 신설된 정상화 방안에 따르면 교육부는 구 재단 측을 포함해 대학평의회,상당한 재산 출연자,학교발전 기여자 등의 의견을 들어 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이에 따라 김 전 이사장 등 원고들은 이번 판결로 정부가 임시이사를 선임할 때 의견을 낼 수 있게 됐다.

다만 이는 구속력이 있는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정부가 임시이사 선임에 의견을 반영할 의무는 없다.

김 전 이사장과 상지대 교직원들의 입장도 갈라진다.

김 전 이사장은 성명서를 통해 "학교를 되찾고 건학이념을 실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해 이번 판결을 자신의 이사회 복귀로 해석하고 있다.

반면 상지대 교직원 측은 "김 전 이사장은 학교 발전에 기여하거나 재산을 출연한 적이 없어 새로 이사회가 설립되더라도 이사로 선임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송형석/정태웅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