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이탈리아산(産)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와인은? 정답은 지난해 2억6168만ℓ를 생산한 스페인산이다.

국내에선 시장 점유율이 8.5%(올 1~4월)로 프랑스·칠레·미국·이탈리아에 이어 5위로 쳐져 있지만,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이 부각되면서 고급 스페인 와인 수요가 늘고 있다.

스페인 와인은 프랑스 '보르도'와인에 비해 가격이 절반 수준이지만 부드러운 캐러멜 향의 맛이 뛰어나 영국 독일 등에서는 애호가들이 적지 않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관세가 낮아질 경우 칠레산 못지 않은 '돌풍'이 예상된다는 게 와인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품질은'보르도급' 값은 절반

1850년 설립된 스페인 최고(最古)의 와이너리(winery·와인 양조업체)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은 스페인 와인의 특성을 보여주는 전형이다.

리스칼은 샤토 마고의 수석 와인 메이커인 폴 퐁타이예 이사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 외에 유일하게 컨설팅을 해주는 와이너리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

지난 12일 마드리드에서 북쪽으로 4시간여를 달려 엘 시에고(스페인 최대의 와인 산지인 리오하 지방에 위치)에서 만난 호세 무게리오 리스칼 마케팅 담당 이사는 "1년에 3번 오크통을 바꿔주고 수령이 25년 넘은 포도 나무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등 리스칼은 리오하 지방에 '보르도 스타일'을 처음 들여온 회사"라고 소개했다.

국내 수입회사인 와인나라에 따르면 리스칼 최상등급인 '마르케스 데 리스칼 그랑 리제르바 2003'의 소비자 가격(와인전문점 기준)은 11만원.'샤토마고 2003'이 73만원이고,세컨드 와인(특급 샤토의 포도밭에서 생산된 2군 와인)인 '파비용 루즈 2003'조차 17만원에 거래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품질에 비해 가격이 많이 낮은 편이다.

와인 수입사인 수석무역의 최신덕 마케팅 팀장은 "보르도 와인은 보통 2∼3년 숙성된 것들도 10만원을 웃도는데 비해 스페인산은 병당 5만원짜리도 4∼10년가량 숙성할 정도로 장기 숙성 와인이 많은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스페인 와인 '재평가' 봇물


스페인은 포도 재배 면적이 40억여평으로 세계에서 가장 넓다.

템프라니요(레드용),비우라(화이트용) 등 고유종을 활용한 와인이 주류다.

프랑스의 AOC(Appellation d'Origine Controlee·원산지 명칭 통제 제도.사용되는 포도의 품종,양조 방법,생산량,알콜 도수 등을 지방별로 엄격히 규제한다.

칠레 등 신대륙엔 이런 제도가 없다)처럼 DO(denominacion de origen)제도를 1970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국내 와인시장 저변이 확대되면서 스페인산에 눈길을 주는 와인 수입업체들이 늘고 있다.

두산주류BG가 지난 1월 말 '란 리미티드 2003'을 포함한 보데가스 란의 4종류 와인을 선보인 데 이어 신동와인은 토레스의 '코로나스 2004'를 내놨다.

금양인터내셔널도 리오하 지역의 대표 와이너리인 마르케스 데 카세레스의 4종류 와인을 출시했다.

카세레스의 와인들은 와인 전문 잡지인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미국 레스토랑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스페인 와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는 "수입사 입장에선 일종의 틈새 시장"이라며 "최근 소비자의 관심이 신대륙 와인에서 다시 유럽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스페인 와인이 뜰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리오하(스페인)=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