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너희가 유통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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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수단, 소말리아 등이 가뭄으로 치명적인 식량난에 빠졌을 때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구호물자를 지원했다.
이들 국가의 대도시 창고에는 구호 식량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백만명의 아사(餓死)를 막지 못했다.
전국 구석구석으로 식량을 실어나를 유통 네트워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탓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상품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필요한 만큼을 적시(適時)에 적소(適所)로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유통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유통'이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에티오피아 등의 경우는 사실 극단적인 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더라도,보다 좋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싼 값에 살 수 있으려면 잘 정비된 유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초(超) 저금리 상황에서도 예전과 같은 인플레에 시달린 기억이 없는 건 이런 유통환경 덕분이었음을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 마트 등 할인점포들은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국내 제조업체뿐 아니라 전세계를 뒤지며 조달원가가 낮은 상품을 찾아내 매대에 올려놓고 있다.
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서 온갖 물건을 들여다 '가격 파괴' 상품을 팔았고, 요즘 중국의 원가가 오를 기미를 보이자 방글라데시 등 원가가 더 낮은 나라를 찾아내 물건을 소싱해오고 있다.
대형 마트들의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은 반사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과 동네 구멍가게 상인들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대량 구매와 재고관리 기법을 앞세운 대형 마트들에 제품 구성이나 서비스, 판매 가격 등에서 경쟁이 안 되는 중소 상인들은 틈새를 찾아 연명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형 마트들의 점포 설립과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입법안을 내놓은 것을 오로지 선거철을 앞둔 '표밭 갈이'로만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대형 마트들의 손발을 일정 부분 묶어서라도 중소 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자는 절박함을 반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의 설립과 영업시간을 제한한다고 해서 시장 점포와 동네 가게들에 그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억지로 특정 시간대와 요일에 대형 마트의 문을 닫게 하더라도, 갈수록 가격에 민감하고 영악해진 소비자들이 그 새를 못참아 시장과 가게에서 물건을 사주리라는 생각은 좋게 말해 순진함의 발로일 뿐이다.
더구나 대형 마트가 아니더라도 홈쇼핑, 오픈 마켓, 인터넷 몰 등 '가격파괴' 상품을 파는 업태의 유통업체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현 정부가 '균형 발전'의 모델로 삼는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영업시간을 규제하지 않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 유통점 영업을 규제한다고 해서 시장상인들에게 손님을 몰아주는 효과가 없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경과 산업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네가 좀 죽어줘야 내가 살겠다'는 식의 마이너스 섬 발상은 시대착오다.
잘하는 학생 기를 죽이기 보다, 성적이 안 좋아진 학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져 그에 맞는 지도를 해주는 게 좋은 교사다.
재래 상인들이 대형 유통점에 비해 상품 조달력에서 밀리지 않게끔 조합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역친화적 전통 상인들의 강점을 인터넷 등 온라인에 결합시킬 여러 방안을 찾는 게 '윈윈'의 길이다.
요즘 국회의원들 마음이 여러가지로 어수선하겠지만, 입법기관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를 좀더 해야 할 것 같다.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
이들 국가의 대도시 창고에는 구호 식량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백만명의 아사(餓死)를 막지 못했다.
전국 구석구석으로 식량을 실어나를 유통 네트워크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던 탓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건 상품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필요한 만큼을 적시(適時)에 적소(適所)로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유통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그림의 떡일 뿐이다.
'유통'이 우리들의 일상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는 데 에티오피아 등의 경우는 사실 극단적인 예다.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더라도,보다 좋은 물건을 조금이라도 싼 값에 살 수 있으려면 잘 정비된 유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최근 몇 년간 계속되고 있는 초(超) 저금리 상황에서도 예전과 같은 인플레에 시달린 기억이 없는 건 이런 유통환경 덕분이었음을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형 마트 등 할인점포들은 조금이라도 더 팔기 위해,국내 제조업체뿐 아니라 전세계를 뒤지며 조달원가가 낮은 상품을 찾아내 매대에 올려놓고 있다.
저임 노동력이 풍부한 중국에서 온갖 물건을 들여다 '가격 파괴' 상품을 팔았고, 요즘 중국의 원가가 오를 기미를 보이자 방글라데시 등 원가가 더 낮은 나라를 찾아내 물건을 소싱해오고 있다.
대형 마트들의 가격파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소비자들은 반사 혜택을 누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 전국 곳곳의 재래시장과 동네 구멍가게 상인들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대량 구매와 재고관리 기법을 앞세운 대형 마트들에 제품 구성이나 서비스, 판매 가격 등에서 경쟁이 안 되는 중소 상인들은 틈새를 찾아 연명하거나 아예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이 대형 마트들의 점포 설립과 영업시간을 규제하는 입법안을 내놓은 것을 오로지 선거철을 앞둔 '표밭 갈이'로만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대형 마트들의 손발을 일정 부분 묶어서라도 중소 상인들과 '공존'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주자는 절박함을 반영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형 마트의 설립과 영업시간을 제한한다고 해서 시장 점포와 동네 가게들에 그 반사이익이 돌아갈 것인지는 따져봐야 한다.
억지로 특정 시간대와 요일에 대형 마트의 문을 닫게 하더라도, 갈수록 가격에 민감하고 영악해진 소비자들이 그 새를 못참아 시장과 가게에서 물건을 사주리라는 생각은 좋게 말해 순진함의 발로일 뿐이다.
더구나 대형 마트가 아니더라도 홈쇼핑, 오픈 마켓, 인터넷 몰 등 '가격파괴' 상품을 파는 업태의 유통업체들이 수두룩하지 않은가.
현 정부가 '균형 발전'의 모델로 삼는 유럽의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영업시간을 규제하지 않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대형 유통점 영업을 규제한다고 해서 시장상인들에게 손님을 몰아주는 효과가 없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경과 산업의 구분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네가 좀 죽어줘야 내가 살겠다'는 식의 마이너스 섬 발상은 시대착오다.
잘하는 학생 기를 죽이기 보다, 성적이 안 좋아진 학생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꼼꼼히 따져 그에 맞는 지도를 해주는 게 좋은 교사다.
재래 상인들이 대형 유통점에 비해 상품 조달력에서 밀리지 않게끔 조합 기능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역친화적 전통 상인들의 강점을 인터넷 등 온라인에 결합시킬 여러 방안을 찾는 게 '윈윈'의 길이다.
요즘 국회의원들 마음이 여러가지로 어수선하겠지만, 입법기관으로서의 본분을 제대로 하려면 공부를 좀더 해야 할 것 같다.
이학영 생활경제부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