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재벌 총수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폭행혐의로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두 얼굴의 경영인'으로 불린다.

한 얼굴은 옛 계열사 직원의 빈소에서 통곡을 하는가 하면 딱한 사정을 듣고 돕지 않고는 못배기는 인정어린 얼굴이다.

수십억, 수백억원의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구조조정 대상 계열사 임직원의 고용승계를 관철할 정도로 한번 맺은 인연과 의리를 중시한다.

또다른 얼굴은 도열한 임직원으로부터 군 사열을 방불케하는 깍듯한 경례를 받으며 출근하고, 출타 시에는 경호원들이 사전 출동해 동선을 정리토록 하는 '권위주의로 뭉친' 얼굴이다.

나이와 경력에 관계없이 그룹 안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의 말에 토를 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정도로 '제왕적 권위'를 누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뜻 보기에 양립하기에 어려운 두 얼굴을 한 몸에 지니게 된 것은 그의 인생사와 경영역정을 살펴볼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한화 안팎 관계자들의 말이다.

내부 관계자들로부터 '무시무시하다'고까지 불리는 그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섬세하고 여려보이는 그의 감성은 모두 김 회장이 29세의 어린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대기업의 총수가 돼 온갖 도전에 맞서게 된 결과라는 것이다.

김 회장은 스스로 '회장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고 느끼는 듯하다.

한국전의 와중에서 부친인 고(故) 김종희 회장이 한국화약(현 ㈜한화 화약부문)을 설립한 1952년 태어난 김 회장은 '동갑내기'로 함께 성장한 회사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종종 드러냈다.

그는 개인 홈페이지에도 "나는 아버지 무릎에서 크면서부터 보고 알아왔습니다.

나와 회사는 똑같은 전쟁둥이요 창업둥이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같아 내 평생이 곧 회사입니다"라고 썼다.

'내가 곧 회사요 회사가 곧 나'라는 김 회장의 감정은 1981년 부친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29세의 나이에 회장 자리에 올라 그룹의 운명을 책임지게 되면서 더욱 굳어진듯하다.

타고난 보스 기질에 이와 같은 책임감이 더해진데다 '어린 총수'로서 카리스마를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그의 이후 행보는 많은 재계 총수들 가운데 특히 권위적인 모습을 보이게 됐다고 재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기름을 발라 납짝하게 뒤로 넘긴 그의 '올백' 머리 스타일이 실제보다 나이를 더 들어보이게 하려는 의도였음은 재계에서 잘 알려진 이야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내로라 하는 총수들이 모이는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가할 때도 유독 김 회장의 경호원들이 사전에 출동해 동선을 정리한다고 부산을 떨어 주변의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그의 권위주의적 행태의 일단을 전했다.

이런 김 회장이다 보니 그룹 안에서 그가 '제왕적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을 따르는 충성파들이 많은 것은 그의 의리와 인정 때문이라고 한화 관계자들은 설명한다.

기사를 통해 기러기 아빠의 딱한 사연을 듣고 비슷한 처지의 사내 임직원들에게 항공권과 경비를 지원해 가족 상봉의 기회를 마련해준 것이나 자택 주변의 북촌 마을 주민에서 '나라를 위해 스파이 혐의를 쓰고' 옥살이를 한 로버트 김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남몰래 후원해온 것이 그의 인정을 잘 말해주는 일화들이다.

가족, 특히 세 아들에 대한 애정은 더욱 극진해 자식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정도라고 지인들은 이야기한다.

한화측은 "젊은 나이에 부친을 여의고 험한 세파를 스스로 헤쳐나가야 했던 개인적 아픔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자식들을 유난히 사랑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부친 사망 이후 그룹 분리 과정에서 형제간에 모진 분쟁을 겪은 것이 역설적으로 김 회장으로 하여금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것 같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김 회장의 이 같은 인생역정을 잘 아는 이들은 결국 도전을 용납하지 않는 그의 강한 카리스마와 유별나게 애틋한 그의 자식사랑이 최악으로 결합된 조합의 결과라고 지적한다.

(서울연합뉴스) 추왕훈 기자 cwhy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