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좀 서 주세요." 지난 8일 도쿄의 유명 빌딩인 선샤인시티 컨벤션홀.이른 아침부터 검은색 정장을 차려 입은 남녀 대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이더니 오전 10시쯤엔 출입구를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몰렸다.

이날 일본의 취업 알선회사 디스코가 개최한 외국인 유학생 취업박람회는 문전성시였다.

마쓰시타전기 등 35개 일본 기업이 참가한 박람회에 하룻동안 입장한 외국인 학생은 2200여명.행사 주최 측도 "이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다"고 할 정도였다.

경기 회복과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의 정년 퇴직이 맞물리면서 인력난을 겪고 있는 일본 기업들이 외국인 유학생 채용에 눈을 돌리자 외국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다.

특히 아시아계 유학생들이 맨 앞에 서 있다.

이날 박람회를 찾은 외국 학생들도 80%가 중국인,10%가 한국인 등 대부분 아시아계였다.

박람회에 온 다쿠쇼쿠대학 경제학과 4학년생인 중국인 샤이코 슈씨(23)는 "졸업 후 중국으로 돌아가 취직하면 초임이 월 10만엔도 안 되지만 일본 기업은 20만엔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일본 기업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면 귀국하지 않겠다"고 했다.

와세다대 전기공학과 4학년인 한국인 유학생도 "취직도 어렵지만 되더라도 '사오정'(45세 정년)을 걱정해야 하는 한국 기업보다는 정년이 보장되는 일본 기업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일본 기업들은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에 따른 기술력으로 10년 불황을 이겨냈다.

그런 일본 기업이 이젠 아시아의 인재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마쓰시타는 앞으로 3년간 1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을 뽑겠다고 한다.

도요타자동차 등 주요 기업들도 앞다퉈 외국인 유학생 모시기에 나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거품경제 붕괴 후 '취업 빙하기' 때 외국에 취업했던 일본의 인재들까지 다시 뽑아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최고 기술력에 아시아의 인재까지 빨아들여 글로벌 경쟁에 나설 일본 기업들. 청년 실업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고용 없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은 앞으로 무얼 갖고 이들 일본 기업과 경쟁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