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온 세월을 돌아볼 틈도 없이 참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재촉하며 살아간다.

붉게 물든 석양을 바라볼 여유가 없고,길섶에 핀 자그마한 들꽃을 어루만져 줄 시간이 없다.

챙겨야 할 사람도 많건만 훗날로 미룬 채,애써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렇듯 삶이 버겁다 보니 빨라지는 건 발걸음이다.

영국 허트포드셔대학의 최근 연구를 보면 발걸음의 속도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 32개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걸음속도를 측정한 결과 10년 전에 비해 10%가량 빨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경제가 활황인 도시일수록 보속(步速)이 빨랐다고 한다.

보행속도는 곧 생활의 속도를 반영하는데,인터넷과 휴대전화 같은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사람들을 조급하고 더 많은 활동을 하도록 유도한다고 결론지었다.

생각해 보면 발걸음은 '마음의 무게'에 다름 아니다.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해 있다면 그 발걸음은 가볍고 유쾌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한달음에 내딛는 그 걸음이 어찌 빠르지 않겠는가.

웨딩드레스를 입고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부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못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일 게다.

그런가 하면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한 발걸음은 더디기만 하다.

이별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가벼울 리 없고,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배회하는 사람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일 게 뻔하다.

그렇지만 어느 발걸음이든 그 안에는 '희망'이 담겨 있지 않나 싶다.

슬픈 소식을 듣고서 달려가는 발걸음 속에는 다소나마 희망을 주겠다는 위로와 격려의 마음이 깃들어 있고,부도를 막으려 은행으로 향하는 발걸음 속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담겨 있다.

당당한 발걸음,도도한 발걸음은 보기에도 믿음직하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다면 그 발걸음은 그저 설레기만 할 것이다.

일상의 일일랑 잠깐 제쳐 두고,신록의 계절을 맞아 산과 들녘에 나가 맘껏 기지개라도 켜보면 어떨까.

돌아오는 걸음걸음은 한결 가볍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발자국으로 가득할 게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