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 < 소설가 >


K시를 향하는 내 마음은 설레었다.

꼭 두 달만의 일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청년기를 보냈다.

그런 만큼 K시는 내 삶의 토양이었다.

턱없이 튀어오르던 나를 오롯이 받아주기도 하고 혹은 내치기도 하며 끊임없이 나를 단련시키던 도시가 바로 K시였다.

한데 이상한 일이었다.

정서적으로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던 도시였는데 K시로 향하는 내 마음은 들떠있었다.

떠나있음으로 해서 더 행복하고 편안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가 못했다.

언제부턴가 그들의 투박한 언어와 억센 몸짓이 그리워진 것은 나도 모르는 사이 그 도시의 정서에 동화되고 길들여졌기 때문인가 보다.

어쨌거나 K시는 내가 떠나올 때 그대로였다.

잿빛으로 낮게 내려와 있는 하늘,텁텁하면서도 어딘지 어수선함이 묻어 있는 공기,무언가 잔뜩 화가 나있는 표정의 사람들,말에 섞여 툭툭 튀어나오는 욕까지.그 친숙함과 익숙함이 이상하게 젖비린내 나는 어머니의 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고여있는 물처럼 변화를 거부하는 그들의 완고함이 그 순간만큼 또 고마운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익숙한 도로와 낯익음은 거기까지였다.

마음먹고 나간 K시의 가장 번화한 거리는 나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거리의 한 곳에 자주 가던 커피숍이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운영하는 가게였다.

그곳에 들러 지인(知人)과 차도 마시고,수다도 떨고,두 달간의 객지생활에서 겪었던 사건들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한데 불과 두어 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아뿔싸! 지인이 운영하던 가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그때의 곤혹스러움이라니.하나도 변한 것 같지 않았는데 불과 두어 달의 시간 동안 그 도시는 나를 이방인 취급했다.

다시 물어물어 찾아간 지인의 새로운 가게에서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왜 그렇게 지쳐 보이느냐고 안쓰러워했다.

나는 어설픈 웃음을 지어보이며 시간 앞에 변하지 않는 게 무엇이 있겠느냐고 말했지만 내심으로는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변한 것은 모습만이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의식 또한 어딘지 무뎌져 있었고 모든 것에 심드렁해져 있었다.

그런 내게 지인은 또다시 타박했다.

왜 그렇게 늙어버렸냐고.나는 그동안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미미하게 감지하고 있었을 뿐이었는데 타인이 확인해주자 더이상 무심해질 수 없었다.

하긴 나뿐이겠는가.

그녀 또한 자신이 많이 변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던가.

나는 그녀에게 당신도 늙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알 수 없다.

내가 폭삭 늙어버렸다는 그녀의 말에 뾰로통해 있었거나 아니면 그녀가 받을 마음의 상처가 안쓰러워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였을까.

그날따라 유난히 빨갛고 파란 원색의 옷들이 오랫동안 내 눈을 잡아끌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 가운데 두어 달이 갖는 시간의 의미가 얼마만큼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긴 것인지 짧은 것인지.순간이 영원하지 않듯이 시간 앞에서 만물이 영원불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그 변화에는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찬찬히 내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그 도시 곳곳에 내 젊은 날의 사랑과 꿈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언제부턴가 실현 불가능한 꿈으로 잊혀져가고 있었다.

지금의 최대 관심사는 노후를 어떻게 준비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가에 있었다.

지난날 나를 들뜨게 만들던 사회에 대한 정의와 사람에 대한 터무니없던 애정,생에 대한 용기와 열정은 어디에도 사라져 버리고 없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사십대 후반,오십을 바라보는 내 생의 위치에서 지금의 생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두 달 후의 내 모습과 생각은 또 어떻게 변해있을까.

속은 얼마만큼 여물어져 있고,또 모습은 얼마만큼 허물어져 있을까.

다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두 달의 시간이 내게 던져준 숙제는 너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