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설명 좀 들어 보세요."

"60세 정년이 보장되고 성과급은 업계 최고입니다."

지난 18일 도쿄 시내 야구장인 도쿄돔 지하 컨벤션홀에서는 취업 알선 회사 주최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참가 회사 직원들은 지나가는 대학생들 소매를 마구 잡아당겼다.

하지만 학생들은 시큰둥했다.

회사 소개만 힐끗 보고 돌아가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내년 봄 대졸 예정자를 채용하기 위한 이번 취업박람회에 참여한 회사는 중견 및 중소기업 113개사.그러나 하루종일 박람회장을 찾은 대학생은 862명에 불과했다.

취업박람회만 열리면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바글거리는 한국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요즘 일본 젊은이들은 '취업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기 회복과 단카이(團塊·베이비붐) 세대의 정년 퇴직이 맞물리면서 인력이 부족해진 일본 회사들이 신입 사원 채용을 크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크루트사가 7315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내년 봄 대졸 예정자 채용 예정 인원은 올해보다 13% 늘어난 93만3000명에 달했다.

버블(거품) 경제기였던 1991년의 84만명을 웃도는 사상 최고치다.

반면 내년 봄 대학 졸업 예정자 중 취업을 원하는 학생은 올해보다 0.1% 감소한 43만7000명에 그쳤다.

기업의 구인수를 일자리를 찾는 구직자 수로 나눈 구인 배율은 2.14배로 16년 만에 2배를 넘어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신입 사원을 확보하려 전쟁을 벌이고 있다.

수백 명씩의 직원을 '리크루터(recruiter·사원 채용 담당자)'로 임명해 모교로 돌리며 인재 사냥을 벌이는 회사도 많다.

기술 인력 부족에 시달리는 전기·전자회사들은 필사적이다.

NEC는 입사 1~3년차 기술직 직원 1000여명을 리크루터로 조직해 출신 대학의 취업 설명회에 파견하고 있다.

도시바도 기술계 직원을 중심으로 800명의 리크루터를 차출했다.

중소기업들은 더 죽을 맛이다.

벤처기업인 시스템설계의 다케이 마모루 인사부장은 "인력난이 심해지면서 대기업들은 신입 사원을 졸업 1년 반 전에 입도선매하고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중소기업은 직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연초 15명을 뽑기로 했으나 현재 1명밖에 채용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취업박람회장 앞에서 만난 와세다대 법학과 4학년 기토 다카시씨(22)는 "도쿄미쓰비시은행 등 5개 기업으로부터 채용 내정 통보를 받았다"며 "봉급 등 채용 조건을 비교한 뒤 최종 선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무자동화 업체인 오에스(OS)의 에다 쿄이치 영업전략실장은 "불과 4~5년 전만 해도 '취업 빙하기'란 말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