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명을 쏘아 숨지게 한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 교민인 조승희씨(23)로 밝혀지면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조씨가 만들어 미국 TV방송국에 보낸 동영상이 전파를 타면서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혼란에 빠져 있다.

일부에서는 조씨의 범행이 미국 내에서 이민 1.5세대(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과 문화를 어느 정도 터득한 다음 이민 간 세대)가 겪고 있는 문화적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 해석하는가 하면 전형적인 미국의 총기 살상 범죄일 뿐이라는 의견도 있다.

동시에 조기 유학의 폐단 등 한국인이 이문화 이민족을 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20일 국내의 여러 전문 직종에서 활동 중인 미국 이민 1.5세대 및 2세대와 전문가인 한상대 명지대 교수 등을 초청해 이번 사건을 진단해 보았다.


◆사회=이번 사건을 미국의 전형적인 사건으로 볼 것인가,우리 한국인이 일정 부분 책임을 느껴야 하는 민족적 문제로 볼 것인가,양쪽이 책임을 공유해야 하는가 등을 놓고 한 마디로 헷갈리는 상황이다.

조승희와 같은 이민 1.5 내지 2세대 입장에선 어떻게 보는가.

◆한상대=이번 사건 자체는 한국인이고 미국인이고를 떠나 그냥 '정신병자'의 범죄 행각일 뿐이다.

정신병자의 짓을 놓고 전체와 연계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이민 1.5세대의 현지 적응 실패로 이번 일이 일어난 것처럼 해석하는 일부의 시각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개인적인 것과 전체적인 것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려는 것은 좋지 않다.

그가 남긴 UCC(사용자제작콘텐츠) 등을 보면 인종적이거나 미국적인 것에 대한 증오는 찾아보기 힘들고 빈부 격차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적개심을 표출하고 있다.
국내서 활동중인 美이민 1.5세대 "워드 성공도 조승희 범죄도 개인의 일"
◆박준원=어떤 민족이든 이민이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다.

조씨와 같은 이민 자녀 출신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사건은 미국 사회에 속한 한 개인의 문제로 봐야 한다.

모국(한국) 국민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에 미안해해야 한다는 여론이 상당한 데 놀랐다.

◆조재형=동의한다.

나 같은 경우 여섯 살 때 이민 간 뒤 26세 때 한국에 처음 왔다.

내가 옛날에 살았던 집에 가 보니 전혀 기억이 안 났다.

아련한 추억도 없었다.

아마 조씨도 나랑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가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고 해도 그는 나처럼 영어와 미국식 사고 방식에 익숙한 미국인으로 봐야 한다.

◆사회=우리가 민족적 정체성이 강한 나머지 다른 민족에 비해 미국 사회 내지는 글로벌 사회에 적응하는 데 각별한 어려움이 있다고 보는가.

◆한상대=일단 적응은 잘하는데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문화적으로 단일성이 워낙 높아 다른 문화와 완전히 소통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브라질 사람들은 태어나면 일단 축구부터, 이탈리아는 성악부터 시킨다는데 우리는 무조건 전 과목 공부를 다 잘하길 원한다.

그래서 다양성이 요구되는 미국 사회에서 전방위에 걸친 경쟁력을 보이는 탁월한 상위 그룹 외에 평범한 이민 1.5세대나 2세대들은 스트레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그 정도가 이번 사건의 배경으로 해석될 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조용훈=언제 어디로 이민을 가느냐, 그곳에 한인사회 한인교회가 어느 정도 잘되어 있느냐,현지 사회가 동양인을 대하는 분위기가 어떠냐 등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

일률적으로 평균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최근 미국 이민이 늘고 있는 러시아와 동구계는 갈등이 우리보다 더한데 이는 이들 민족의 문제가 아니고 이민 역사가 짧은 탓일 뿐이다.

◆사회=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이 미국 친구들로부터 좋지 않게 인식될까 봐 걱정되나.

◆김승연=UCC의 내용이나 팔목에 새긴 'Ismail Ax(이스마일의 도끼)'란 단어 등을 볼 때 조씨의 정체성은 미국 백인에 가까운 것이다.

특히 동영상을 TV 방송에 보낸 것은 전형적인 미국 화이트칼라 범죄인의 행각이다.

단순히 그가 한국 국적을 갖고 있다고 해서 국가 차원에서 애도하고 모국인 전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면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막상 미국 현지에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데 모국에서 너무 나라 전체가 집단 반응을 보이면 현지인들은 "한국인들이 뭔가 켕기는 것이 있어서 저러나 보다"고 생각할 것이다.

◆박준원=인터넷 시대는 모든 정보가 백일하에 드러나기 때문에 한국인 전체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즉 마녀 사냥식 분위기는 생길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걱정하지 않는다.

◆조용훈=미국인들은 한국인 전체와 연관시키진 않을 것이다.

그것이 미국 문화요 기질이다.

백인이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고 해서 백인 모두의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강지선=물론 9·11 테러가 발생하자 일부 미국 언론은 이를 계기로 이슬람 사회 전체를 문제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사회=그렇다면 모국인 한국은 이번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조용훈=한국 사회는 중요 사안이 있을 때마다 너무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다.

미식축구의 영웅 혼혈인 하인즈 워드 신드롬을 보면 그와 우리를 동일시하고 온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조씨 때문에 우리 국민 모두가 미국인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는 동전의 앞뒷면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사회=미국 이민의 목표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유독 수직상승 욕구가 강한 한국인이 현지에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모국에서보다 더한 좌절감을 느끼면서 언저리,주변인으로 전락하는 사례가 많지 않을까.

◆박준원=미국 사회는 가치관, 특히 직업적 가치관이 다양하고 수평적 독창성을 인정받는 사회다.

이를테면 조승희씨가 버지니아공대보다 더 좋은 대학,누나와 같은 프린스턴대학 수준을 못 가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는 해석은 지극히 국내적인 시각이다.

◆강지선=이민 1세대 부모들이 지나치게 자녀들의 인생에 개입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떤 친구들은 한국적 가정 교육이 싫어서 부모를 부끄러워하거나 심지어 김치 등 한국 음식을 싫어하는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을 드물지만 보게 된다.

◆김승연=한국 부모들은 아이들이 겪어야 할 갈등을 자신들이 대신 해 준다.

어느 대학을 가고 어떤 직업을 택할 것인지를 부모들이 결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적 가치관을 고수하고 다른 것들과의 소통을 등한시하는 것이 자식 세대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 이번 사건을 결부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는 어떤 이민 사회도 겪는 문제다.

최근 미국 이민을 온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은 더 심하다.

◆사회=이민과는 또 다른 형태로 미국에 많이 가고 있다.

조기 유학이 그것이다.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는데.

◆한상대=조기 유학 자체를 백안시할 필요는 전혀 없다.

글로벌 시대에 빨리 나가서 바깥 세상을 접하는 진취성은 장려되어야 한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미국에 떨어뜨려 놓음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이를 유학 자체의 문제로 봐선 안 된다.

◆박준원=국내 표현으로 '묻지마 조기 유학', 즉 어떤 정보도 없이 아이들만 미국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형태의 유학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이문화 이민족과의 갈등,현지 부적응,정체성 혼란 등은 이민 자녀보다 조기 유학생들이 훨씬 심각하다.

◆사회=미국에서 성장한 미국인적 관점에서 한국이 한·미 FTA로 상징되는 글로벌화 시대에 보다 개선해야 할 점은 뭘까.

◆강지선=교육이 많이 바뀌어야 한다.

미국 사회 등에 비춰 창의력 교육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그래서 자기만의 생각보다는 대세나 순리에 따라가는 경향이 높다.

이를테면 웰빙이나 친환경 등을 강조하고 즐기고 추구하려는 분위기가 폭발적인 데 비해 정작 환경 보호를 실천하려는 정서는 대단히 희박한 데 놀랐다.

글로벌 시대에 이민족 이문화와의 소통에서 존중받으려면 이래서는 곤란하다.

◆한상대=좀 길게 보고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

조씨 사건도 너무 빨리 결론 내리고 대응하려는 것 같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국내 분위기는 비이성적인 부분이 많다.

이를테면 특정 스포츠는 스포츠 팬들의 문제이지 그것으로 국민 전체가 일희일비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는 특정 사안,개인적인 문제,일부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전체의 문제로 동일시하는 경향이 너무 강하다.

여유를 가지고 자신만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정리=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