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채널 우리말 더빙은 불허 유지

최종 타결이 임박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방송분야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외국인 투자제한을 사실상 없애 국내 유료방송 콘텐츠시장은 미국에 개방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송분야 협상 결과는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영상산업에 득은 전혀 없고 악영향만 준다는 점에서 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또 방송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문화 다양성과 국가 정체성 확보를 위해 방송시장을 개방대상에서 제외하기로 의결했으나 결국 막아내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협상단 관계자에 따르면 현행 방송법상 일반 PP(보도, 종합편성 제외)의 외국인 직접투자는 49%로 제한됐으나 이번 협상에서 직접투자 제한은 유지하되 외국인의 간접투자를 100%까지 개방하기로 했다.

또 PP들이 국산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편성해야 하는 비율을 영화는 25%에서 20%로, 애니메이션은 35%에서 30%로 낮추기로 했다.

국내 PP의 외국인 간접투자를 100% 개방했다는 것은 외국인이 100% 투자한 법인도 외국인으로 간주하지 않고 국내법인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미디어그룹이 국내에 100% 지분을 투자해 법인을 세운 뒤 이 국내 법인을 통해 국내 PP의 지분 100%를 가질 수 있어 사실상 외국에 100% 개방한 셈이다.

현행 방송법령에서는 외국인이 특정 법인의 지분 50%를 초과해 보유하고 있는 경우 해당 법인을 외국인으로 규정하고 국내 PP의 지분투자를 49%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직접투자를 열었다면 투기성 자본의 국내 유입에 따른 방송의 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지만 간접투자로 개방하면서 적어도 이러한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또 PP의 외국인 개방은 협정발효 후 3년으로 유예했으며 비준을 거쳐 발효될 때까지 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미국 미디어기업은 5년 이후에 국내에 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방송시장은 세계화에 가장 취약한 산업으로 꼽히고 있어 국내 PP들은 수익성에 타격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방송산업의 핵심인 방송프로그램은 한계생산비용이 0에 가까워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은 국내 유료방송시장 진출에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국내 PP들이 최근에는 자체제작 역량을 늘리고 있기는 하지만 걸음마 수준에 불과하고 주요 프로그램은 대부분 미국에서 구매한 것이기 때문에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 자본이 직접 PP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PP들에게 콘텐츠를 판매하지 않거나 가격을 상당히 높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

아울러 미국 미디어기업들의 방송 분야 매출액 규모는 73조 원으로 한국의 7조7천억 원에 비해 10배 가량 많아 손쉽게 지배력을 확대할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블TV비상대책위원회는 "자본과 콘텐츠에서 취약한 국내 영세 케이블TV 방송사업자는 미국의 미디어 공룡들과 애당초 경쟁할 수가 없다"며 "이런 환경에서 외국에 소유지분을 100% 준다면 국내 방송주권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삼성증권 구창근 애널리스트도 "해외 방송자본의 자유로운 PP 설립이 허용돼 해외 방송사와 배급사는 프로그램 판권을 국내 PP에 판매하는 방식 이외에 직영 PP를 통한 직접진출이 가능하다"며 "PP 시장 경쟁이 심화할 수밖에 없고 판권 가격도 오를 것이기 때문에 PP의 수익성에는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핵심 쟁점이 됐던 국산 프로그램의 의무편성 비율은 지상파방송에는 적용하지 않고 PP에 대해서만 5%포인트 낮추기로 해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PP의 국산 프로그램 의무편성 비율은 현행 방송법 시행령상 영화의 경우 20~40%, 애니메이션의 경우 30~50%로 규정돼 있으며, 이 범위에서 방송위가 문화관광부 장관과의 합의를 거쳐 해마다 고시하고 있다.

현재는 각각 25%, 35%로 규제하고 있는데 이번 협상에서 20%, 30%로 낮춰 방송법 시행령 범위로 현행 유보했다.

이러한 국산 쿼터 완화는 국내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제작 편수가 적다는 현실에 따라 PP들도 요구한 것이기도 하다.

또 이번 협상에서 외국 프로그램 중에서 특정 국가의 프로그램을 60% 이내에서 편성하도록 제한했으나 이 기준을 70%로 늘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는 외국 프로그램에 대한 규제로 국내 영상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외국 채널의 우리말 더빙 허용 여부와 관련, 미국 측의 요구를 수용해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으나 1일 밤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는 불허를 유지하기로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송위는 PP 시장 개방에 따른 외국자본의 국내 시장 잠식을 고려해 국내 PP에 5년간 1조원 가량의 재정적 지원을 포함한 종합지원대책을 조만간 마련해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justdus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