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경영을 물려받은 이후 일을 할수록 도전의욕이 생깁니다.

기업 경영이 제 적성에 어쩌면 그렇게 잘 맞나 싶을 정도지요."

박성경 이랜드그룹 총괄부회장(50)이 작년 10월 오라버니인 박성수 회장으로부터 그룹 경영의 실무를 넘겨받은 뒤 지난달 29일 처음 기자와 만나 말문을 열었다.

"회장님은 한번 믿음을 주면 철저하게 일을 맡기시는 분이죠.총괄부회장을 맡은 뒤 회장님을 만나는 횟수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입니다.

회사가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잡는 일엔 도움을 주시지만,저를 비롯한 각 사업부문의 책임자들에게 완전히 경영권을 넘기신 거죠."

박 회장의 이런 '믿음'은 그에게 그만큼의 부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오빠로부터 도움의 손길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회장님이 2004년 갓 인수한 여성복 전문업체 데코의 대표를 맡기면서 저의 경영능력을 지켜봤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막막했죠. 데코를 인수했을 때의 경영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열악했어요. 버티다 못해 회장님에게 돈을 빌리려 했지만 딱 잘라 거절하시더군요." 그때 오기가 생겼던 걸까.

2006년 데코의 매출은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했고,순이익도 312% 늘었다.

박 부회장은 1979년 이화여대 섬유예술학과를 졸업한 뒤 가정을 꾸려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 1984년 박 회장의 부탁으로 이랜드에 입사했다.

헌트,리틀브랜 등을 론칭시키며 디자인 작업에 주로 참여했던 박 부회장은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경영 일선에 뛰어들었다.

"패션 유통에 관해서는 안해본 게 없습니다. 현실적인 경험은 풍부하게 했죠."

데코 대표이사 시절 그의 진면목은 은행과의 거래에서도 확인됐다.

차입금 상환기한을 연장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다녔을 때,특유의 차분함과 여성스러움으로 은행 관계자들로부터 기대 이상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 임직원들의 업무에 관해서는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다.

"세상에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죠." 회사에서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분위기를 휘어잡을 수 있는 강단이 풍겨져 나온다.

이랜드는 한국까르푸 인수로 유통업 영역을 넓혀가고 있지만 여전히 패션회사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박 부회장은 앞으로 이랜드의 주력사업은 유통이라고 잘라 말한다.

"우리는 자체 브랜드만 57개가 있어 생산과 유통이 결합돼 시너지 효과를 엄청나게 낼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내년에는 중국에 100% 단독 투자로 아울렛을 진출시킬 계획이다.

이처럼 빈틈없는 경영인으로 변신해있지만,그의 패션 감각은 여느 젊은 사람 못지 않다.

단적인 예가 20년 동안 언제나 옷의 스타일에 맞춰 쓰고 다니는 모자다.

"멋 때문에 쓰는 것도 있지만 모자를 쓰면 사람들의 시선을 분산시켜 얼굴 화장이나 머리에 신경을 덜 써도 되는 편리함이 있죠."

박 부회장은 앞으로 이랜드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올 가을에 캐주얼 브랜드인 '후아유'를 미국 뉴욕에 진출시킬 예정이다.

2010년에는 미국 안에서만 이랜드 브랜드의 매장을 800개 이상 낼 계획이다.

"유통업을 키우는 것과 함께 브랜드 이미지를 쇄신하고 싶습니다. 이제는 질적인 성장도 해야죠."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