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회사원인 송경훈씨는 최근 월급통장을 증권사의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바꿨다. 은행에서는 이자를 거의 주지 않지만 CMA는 하루만 맡겨도 4%대의 이자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은행계좌에 비해 불편한 점이 적지 않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CMA로 돈을 받으려면 CMA 계좌번호가 아닌 제휴은행의 가상 계좌번호를 알아야 했다. CMA는 자금이체 기능이 없어서다.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송금은 물론 현금인출도 안 된다.

왜 이럴까. 이유는 증권사에는 계좌 자금을 이체할 수 있는 지급결제 기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고객이 송금 자동이체 등을 하려면 은행의 가상계좌를 함께 개설해야 한다. 은행은 증권사에 가상계좌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지난해 135억원을 받았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가상계좌에 대해선 일반 계좌와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자를 더 주는 CMA용 가상계좌에 같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하면 은행자금이 증권사로 빠져나갈 게 뻔해서다.

최근 증권업계와 은행업계가 지급결제 기능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이런 속사정이 깔려 있다. 국회에서 심의 중인 자본시장통합법(가칭)에는 증권사에 소액 지급결제 기능을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는데 은행업계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 때문에 자본시장을 키우려는 법 제정 자체가 무산되는 건 아닌지 하는 우려도 나온다.

증권업계는 자금이체가 허용되면 은행과의 경쟁이 촉진돼 결과적으로 금융 소비자 편익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은행은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떨어지는 증권사들이 지급결제에 참여하게 되면 지급결제시스템 자체에 혼란이 올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회는 12일 공청회를 열어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은행 주장대로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면 증권사에 소액지급결제를 허용하는 것은 시기상조다. 하지만 업계 이익에 배치된다는 이유로 금융 소비자들의 편익이 희생돼서도 안 된다. 공청회에서 지급결제시스템의 안정성과 효용성에 대해 객관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김태완 증권부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