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무 < 시인 >

늦은 밤이나 새벽 숲 속에 가 수목과 나란히 서서 귀 기울이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귀(달팽이관) 속으로 나무들 수액 빨아올리는 소리가 켜놓은 발동기 소리처럼 우렁차게 들리는 것을. 나무들은 그렇게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울퉁불퉁한 수피에 햇살의 부리가 톡,톡,톡 쪼고 가면 가지 밖으로 초록의 주둥이들은 일제히 온통 하늘을 파랗게 물들이며 재잘댈 것이다. 단단한 껍질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화약 같은 푸른 욕망이 숨어있다가 햇살이 다녀가는 순간 오래된 약속처럼 화약이 터지듯 그렇게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이다. 꽃 필 때,초록들 돋아오를 때 준비없이 함부로 숲 속에 몸을 들이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함성으로 고막이 터질는지 모른다. 이것이야말로 '봄의 줄탁'(시인 도종환)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곧 갓 태어난 연초록들과 꽃들 때문에 봄뜰이 마냥 분주하고 시끄러울 것이다. 아니,벌써 부화한 남도의 꽃들이 대열을 지어 어린아이의 보폭으로 북상 중이다.

늦봄,숲의 사내들은 이두박근의 근육질을 과시하며 산을 쿵쿵 내달릴 것이고 열락에 들뜬 다산성의 여인들은 두근,두근거리는 자궁 열어 꽃 진 자리마다 씨앗들을 토해낼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까닭도 없이 몸이 아프다. 질병과는 상관없이 몸이 아파오는 것이다. 하늘 향해 봉긋 솟아오른 우유빛 젖통 흔들어대는 도화살 도진 봄꽃들의 방자한 웃음이며,홍조 환한 얼굴들을 보고 있으면,덩달아 나도 몰래 온몸이 달아올라서 들숨날숨이 가빠온다. 더불어 몰래 숨겨둔 사랑 하나가 갖고 싶어진다.

해마다 봄이 오면 몸이 고파온다. 일탈충동 부추기는 봄이 오면 나는 위험한 짐승이 된다. 국가와 이웃과 형제와 자식도 잊고 당장에 풀어야 할 숙제도 잊고 애비 어미 모르는 시간의 후레자식이 되고 싶은 것이다. 대책 없이 세월의 낭비를 살아 큰 죄 하나를 낳고 싶은 것이다. 용서 못할 죄로 여생을 끙끙 앓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만은 혀 끌끌 차시다가 마침내는 그럴 법도 있다고 고개 인색하게 끄덕이시는 그런 불경을 저지르고 싶은 것이다.

보라,봄이 오면 온통 초록불이 파랗게 타오는 들판을.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르는 것을. 젖을수록 더욱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를. 누구라서 저 강렬한 유혹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씨방을 뛰쳐나온 민들레 홀씨와/ 짝 찾아 나는 수양버들 꽃가루// 반짝, 햇살에 흔들리는/얇고 투명한,저 부유하는 방랑의 후예들"(시인 김화순의 시,'낙화산 확,퍼질 때'중에서)

봄은 참 못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환장하게 빛나는 햇살이 나를 꼬드긴다. 어깨에 둘러멘 가방 이제 그만 내려놓고 오는 차 아무거나 잡아타라고 충동질한다. 도화지처럼 푸르고 하얗고 높은 하늘이 멀쩡한 아내 버리고 젊은 새 여자 얻어 살림이나 한 번 차려보라고 부채질한다. 흐르는 냇물과 가지 밖으로 얼굴 내민 연초록 시켜 지갑 속 명함을 버리라고,기어이 문제아가 되라고 한다. 이렇듯 봄은 나로 하여금 제도적 일상의 울타리를 벗어나라고 연신 가출 충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모든 유용과 효용의 가치로부터 도망가라고 꽃들을 시켜 꼬드겨댄다. 그러나 나는 끝내 제도와 일상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현실적 자아의 통제 안에서 내 모든 충동들은 망설이다가 발버둥치다가 이내 체념한 듯 순치되어 다소곳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봄이 내게 불온한 충동만을 충동질하는 것만은 아니다. 봄은 내게 잃어버린 사랑을 회복시켜주기도 한다. 나는 이 봄의 양가성을 좋아하고 존중한다. 마음으로만 저지르는 위반충동은 때로 무기력한 삶에 활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니,그것을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봄은 충동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계절이다. 이 산 저 산 그 누가 있어 눈부시도록 환한 꽃불 피워놓는 것인가. 불붙어 활활 타오르는 산. 한오라기 연기,매캐한 내음도 없이 순연한 빛깔로 타오르는 봄산은 장엄하다. 해마다 꽃불 지피는 봄이 오면 나도 내 안의 모든 불순한 것들을 내놓고 저렇듯 밝게 타오르는 일에 몰두하고 싶어진다. 사랑의 방화범이 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