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자회담이 열리기 전에 BDA를 풀어줄 수는 없었다."

북핵 6자회담이 또 한번 좌절된 22일 베이징의 한 고위 외교관은 이렇게 토로했다.

북한을 움직이게 하는 데 실물이 필요하다는 것을 회담 6개국이 모두 알고 있었지만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 자금의 동결 해제를 더 일찍 시작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 관리는 "돈을 풀어줬는데 6자회담이 안 열리거나 북한이 핵시설을 폐쇄하는 조건으로 새로운 요구를 들고 나온다면 6자회담 대표단이 엄청난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 자금의 전액 해제라는 결정을 내리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청와대와 우리 외교부였다.

미 재무부는 BDA 동결 해제를 마카오 당국에 일임하고 싶어했고 합법성이 입증된 일부 자금만 풀어줄 수 있다고 고집했으나 우리 정부는 전액 해제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천영우 우리 측 회담 대표는 이를 두고 "지난해부터 한·미가 협의해온 공동의 포괄적 접근 방안대로 해결됐다"고 설명한다.

급하기는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도 마찬가지였다.

대니얼 글레이저 미 재무부 부차관보는 동결 전면 해제를 발표하면서 "자금 이체는 법적,기술적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하루 아침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BDA문제 해결'이라는 환호 속에 사장되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BDA문제가 해결됐다"며 "이제 비핵화 다음 단계인 핵시설 불능화 문제를 집중 협의하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BDA자금 반환이 지연되면서 6자회담이 성과없이 끝난 마당에 핵시설 불능화는 고사하고 초기 단계로 약속한 시설 폐쇄마저 불투명해 보인다.

2·13합의에는 북한이 중유 5만t을 받고 4월 중순까지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것으로 돼있으나 5만t은 착수금에 불과하고 실제 대가는 BDA동결 해제라는 사실은 6자회담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협상을 세분화하고 단계별로 이득을 챙기는 철저한 살라미 전술"이라며 "핵시설 폐쇄는 BDA문제가 해결돼야 가능하다는 조건이었다.

그 다음 단계에선 새로운 협상을 시작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정지영 기자 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