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桂燮 < 서울대 교수·경영학 >

2차 대전 이후 후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한 나라는 한국과 대만뿐이다.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을 능가하는 업적을 동양의 조그만 나라들이 이룩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원도 없고 인구 밀도도 매우 높은 두 나라를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은 '교육'이다. 자연 자원도 없고 국토 면적도 작은 약소국의 성장 엔진은 사람뿐인데 이를 어떻게 키우느냐 하는 것이 관건(關鍵)인 셈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초·중등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는 현실에서 선진국의 진입 요건은 고등교육,즉 대학교육 수준이 척도가 된다. 선진국일수록 대학의 역사가 길고 교육 수준이 높으며 유명 대학이 많다.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현실은 어떤가. 우선 교육 예산의 현실을 보자.

정부 교육 예산은 지난 3년간 연평균 16%씩 증액을 하는 동안 고등교육 예산은 9%씩 증가하고 있다. 국립대로서 가장 혜택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서울대학교의 예산 증가폭은 지난 4년간 거의 동결이다. 국고 지원은 총 예산의 27%에 불과하다. 2006년 서울대의 운영 예산은 3900억원. 이는 미국 하버드대학의 7분의 1,일본 도쿄대학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액수다. 대만 대학은 물론 국내 대형 사립대학 예산보다 적다. 서울대의 재정 형편은 2004년 내려진 학부 축소(縮小) 결정에 따라 한층 더 악화됐다. 정원 축소에 따라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즉 기성회비 액수는 줄었는데 정부 지원금은 제자리걸음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론상으로는 들어오는 돈이 줄면 씀씀이를 줄여서 이를 대처(對處)할 수 있다. 아니면 수입을 늘릴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국립대학의 수입은 국고로 귀속(歸屬)되기 때문에 직접 혜택이 없다. 또한 국립 대학인 서울대의 운영은 정부로부터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입학 제도는 물론이려니와 학교 운영 방안 전반에 걸쳐 시시콜콜 간섭을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은 국고 지원이 미미한 사립 대학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2004년 현재 정부의 고등교육 예산은 약 3조3000억원이다. GDP 대비(對比)로는 약 0.43% 수준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다.

더군다나 예산 중에서 61%는 국립대학 인건비 등에 쓰이는 운영비이고 대학정책 지원 사업 예산은 1조3000억원에 불과하다. 대학 구조개혁 지원 사업은 매년 줄어들어 2007년 520억원에 불과하다.

반면에 지원(支援)은 쥐꼬리만 하면서도 규제(規制)는 엄청나다. 한 사립대학 교무처장의 말을 빌리면 현재 교육부에 의한 규제 종류는 78가지에 이르고 눈에 보이지 않는 행정지도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사정이 이렇기에 대학 관계자들은 2004년에 이어 올해 소집된 대학자율화 위원회에 참가를 거부하고 있을 정도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면서 이미 규제 가이드라인을 정해 놓은 상황에서 열리는 위원회는 정부의 언론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대학 교육의 질이 높을 리 없다. 2004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대학경쟁력 평가에서는 우리 대학들이 제공하는 교육의 질이 조사대상 60개 국가 중에서 59위를 차지하는 치욕을 겪었다. 국가의 미래에 직결된 대학 교육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다. 지난 2월 말 OECD는 우리의 고등 교육의 경쟁력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정부 규제의 완화와 교육 시스템의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고 역설했다.

이대로는 곤란하다. 지식집약적 산업 시대에 걸맞은 국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본인들이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지 못해 생기는 청년 실업을 완화(緩和)시키기 위해서라도 고등교육 정책은 이제 규제에서 해방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