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이건희 삼성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라"고 신경영을 선언했을 당시 김우중 대우 회장은 돌연 '세계경영'을 들고 나왔다.

삼성뿐만 아니라 현대 LG그룹까지 1980년대 호황의 뒤안길에서 전열 재정비를 위한 대대적인 경영혁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을 때 유독 대우의 눈길만은 바깥으로 향해 있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던 김 회장의 팽창 욕구는 거의 무한에 가까웠다.

동유럽을 넘어 중동 아프리카까지 섭렵한 대우의 거침 없는 진격은 한때 미국 하버드대학의 토론 주제가 될 정도로 세계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대우는 중천에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기세등등했다.

김 회장은 출입기자들을 전세기에 태워 '세계경영 코스'를 함께 순회했다.

1998년에 이르러 대우는 국내에 40개,해외에 무려 396개의 법인을 거느린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개발도상국이 배출한 다국적 기업 중 해외 자산을 가장 많이 가진 기업으로 부상한 것이다.

1993년에 150여개에 불과했던 대우의 해외 네트워크(법인,지사,건설 현장 포함)는 600개에 육박했다.

당시 대우그룹의 국내 임직원 숫자는 10만5000여명,해외 사업장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21만9000여명에 달했다.

이 규모는 오늘날 글로벌 시장에서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임직원 숫자와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1997년 말 초유의 외환위기가 닥치자 이 모든 것들은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했다.

금리와 환율이 급등하면서 대부분 차입에 의존해 유지해 나가던 해외 사업장들은 거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김 회장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한 번 터진 둑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1999년 8월 대우 주력 계열사들이 은행들의 손에 넘어가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면서 웅장했던 대우그룹도 속절없이 공중분해됐다.

김 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대우에 투자했던 소액주주들이나 돈을 빌려준 채권자들 역시 피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이 결과론이긴 했지만 대우의 실패를 놓고 김 회장의 경영 스타일에 대한 질책과 차입 일변도 경영을 펼쳤던 대우의 패망은 필연적이었다는 분석들이 뒤따랐다.

대우 해체 8년이 지난 지금,한때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몰렸던 옛 대우 계열사들은 어떻게 됐을까.

대우일렉트로닉스처럼 아직도 고전하고 있는 기업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계열사들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수익 위주의 경영을 앞세워 우량 기업들로 거듭난 상태다.

엄청난 공적자금을 투입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대우 특유의 진취성을 갖춘 인재들이 대부분 회사를 지키며 생존 능력을 키웠던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김 회장이 대우그룹 경영에서 손을 뗐던 1999년 10월 당시 대우그룹 내 10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2조2692억원.하지만 지난 20일 현재 총 9개에 이르는 대우 옛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무려 25조3600억원에 달한다.

만 8년이 채 안 돼 12.5배로 불어난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호조를 보이고 있는 기업은 대우조선해양.2000년 대우중공업에서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와 함께 떨어져 나온 이 회사는 세계 LNG선 시장을 싹쓸이하고 생산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면서 가장 먼저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2000년 7815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지난해 5조4007억원으로 불어났다.

대우종합기계도 2001년 11월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했으며 2005년 4월 두산중공업에 팔리면서 사명을 '두산인프라코어'로 변경했다.

건설중장비와 공작기계 등은 중국 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을 갖고 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3조2828억원과 1912억원으로 2001년에 비해 모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2000년 말 ㈜대우에서 분할된 대우건설 역시 2003년 워크아웃을 성공적으로 졸업한 뒤 지난해 말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팔렸다.

지난해 11.0%의 기록적인 영업이익률을 기록하며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했으며 수주 잔액도 21조원을 넘는다.

대우인터내셔널은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지만 성장 잠재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얀마 가스전 개발에 참여해 상당한 수익을 거둘 것으로 보이는 등 자원개발 사업을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가총액이 가장 가파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자동차 판매와 건설업을 동시에 영위하고 있는 대우자동차판매는 2002년 11월 일찌감치 워크아웃에서 벗어난 여세를 몰아 금융,부동산 개발,물류,보험 등의 신규 사업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다.

2000년 5월 산업은행에 넘어간 대우증권은 업계 최고 수준의 증권사 명단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으며 산업은행 개편과 맞물려 향후 대형 투자금융회사로의 변신이 점쳐지고 있다.

대우 계열사 가운데 가장 부실이 컸던 대우자동차는 5개사로 분할돼 제 각각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주력인 대우차는 우여곡절 끝에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해 과거의 수출 역량을 회복했고 대우인천차(옛 대우차 부평공장) 역시 2005년 GM대우에 흡수됐다.

부산대우버스는 영안모자에,군산 상용차는 인도 타타모터스에 팔렸다.

또 쌍용자동차는 2004년에 중국 최대 자동차그룹인 상하이차(SAIC)에 팔렸으며 경남기업도 그해 대아건설을 새 주인으로 맞았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