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 끝난 세계경영…대우 40년] (인터뷰) 장병주 전 ㈜대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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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그룹이 외환위기로 휘청거릴 때 난파선을 온몸으로 구해 보려고 애쓴 전문경영인들도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고 김우중 회장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중 핵심 인물이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외환 위기 이후 대우가 본격적으로 자금압박을 받을 때부터 그룹 전체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모체를 맡았던 만큼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컸다.
분식회계,사기대출,국내자금 해외 유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배짱 두둑한 대우맨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김 회장을 찾아가 세상 사는 얘길 나누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김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장 전 사장을 만나 대우맨들의 심경을 들어봤다.
-대우 출범 40주년 행사에 김 회장께서 참가해 정을 나누면 더 좋을 텐데요.
"모시려고 했지만 본인께서 형집행정지로 나와 있는 상태에서 행사에 참석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세계 곳곳을 누볐던 대우맨들을 왜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수감생활을 하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죠.
"실정법을 어겼으면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규모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 분식을 한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판결은 사실 억울합니다.
외환위기로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그룹 전체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 차입금을 국내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피와 땀으로 쌓아온 해외 자산을 지키려고 120억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 자금 상환에 필요한 26조원을 국내에서 조달했죠.게다가 우리 회장은 돈 빼돌릴 성품이 아닙니다."
-그만큼 해외 사업이 부실했던 것은 아닌지요.
"그룹이 망했으니 나온 얘기지요. 당시 경제 관료들이 해외투자를 빚으로만 보고 그렇게 평가한 것입니다. 대우가 세계경영을 위해 주요 포스트에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생산기지를 마련한 시점에서 외환위기가 터졌지요.
초기 투자가 결실을 보기 전에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것인데,당시 대우가 구축한 전 세계 네트워크가 지금 가동된다면 우리 경제의 큰 수익원으로 뿌리내렸을 것입니다."
-대우가 로비에 강한 그룹으로 알려졌는데,김대중 정권에서 경제 관료들과의 관계가 왜 그렇게 나빴습니까.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다 보니 재계를 대표해 의견을 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정부가 20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예상하고 있을 때 김 회장은 설비 수입 등을 줄이면 연간 500억달러의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당시 관료들은 대우의 브랜드 가치를 너무 낮게 봤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대우의 사업 모델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대우 주력 계열사들이 알토란 같은 우량 회사로 클 수 있었겠습니까. 대우가 해체된 것은 경영에 문외한인 당시 경제 관료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의 자금줄을 죄었기 때문입니다. 조직적인 로비는 전혀 없었습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됐지만 사회에 기여한 점도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요즘 5,6년 후 우리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대우처럼 겁 없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도전하는 기업이 없으니 미래가 불안한 것이지요. 김 회장은 사업가로서 비참한 상황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기업가보다 도전 정신이 많았던 분입니다. 대우는 망했지만 대우가 추구했던 그런 도전 정신만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입니다. 마음 고생 할 만큼 했고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대우의 공과(功過)라도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익원 기자 iklee@hnkyung.com
이대로 쓰러질 수 없다고 김우중 회장에게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중 핵심 인물이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외환 위기 이후 대우가 본격적으로 자금압박을 받을 때부터 그룹 전체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모체를 맡았던 만큼 누구보다 마음 고생이 컸다.
분식회계,사기대출,국내자금 해외 유출 혐의로 기소돼 실형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갔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배짱 두둑한 대우맨이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 차례 김 회장을 찾아가 세상 사는 얘길 나누곤 한다.
예나 지금이나 김 회장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장 전 사장을 만나 대우맨들의 심경을 들어봤다.
-대우 출범 40주년 행사에 김 회장께서 참가해 정을 나누면 더 좋을 텐데요.
"모시려고 했지만 본인께서 형집행정지로 나와 있는 상태에서 행사에 참석하는 게 적절치 않다며 고사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세계 곳곳을 누볐던 대우맨들을 왜 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수감생활을 하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셨죠.
"실정법을 어겼으면 책임을 지고 벌을 받는 게 당연하지요. 규모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 분식을 한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돈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판결은 사실 억울합니다.
외환위기로 국가 신용도가 떨어진 상황에서 그룹 전체의 파산을 막기 위해선 만기가 돌아오는 해외 차입금을 국내에서 내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피와 땀으로 쌓아온 해외 자산을 지키려고 120억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 자금 상환에 필요한 26조원을 국내에서 조달했죠.게다가 우리 회장은 돈 빼돌릴 성품이 아닙니다."
-그만큼 해외 사업이 부실했던 것은 아닌지요.
"그룹이 망했으니 나온 얘기지요. 당시 경제 관료들이 해외투자를 빚으로만 보고 그렇게 평가한 것입니다. 대우가 세계경영을 위해 주요 포스트에 막대한 투자금을 들여 생산기지를 마련한 시점에서 외환위기가 터졌지요.
초기 투자가 결실을 보기 전에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것인데,당시 대우가 구축한 전 세계 네트워크가 지금 가동된다면 우리 경제의 큰 수익원으로 뿌리내렸을 것입니다."
-대우가 로비에 강한 그룹으로 알려졌는데,김대중 정권에서 경제 관료들과의 관계가 왜 그렇게 나빴습니까.
"김 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다 보니 재계를 대표해 의견을 내야 할 때가 많았습니다. 정부가 20억달러 정도의 무역흑자를 예상하고 있을 때 김 회장은 설비 수입 등을 줄이면 연간 500억달러의 흑자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당시 관료들은 대우의 브랜드 가치를 너무 낮게 봤던 것 같습니다. 애초에 대우의 사업 모델이 잘못된 것이라면 어떻게 대우 주력 계열사들이 알토란 같은 우량 회사로 클 수 있었겠습니까. 대우가 해체된 것은 경영에 문외한인 당시 경제 관료들이 유동성 위기에 몰린 대우의 자금줄을 죄었기 때문입니다. 조직적인 로비는 전혀 없었습니다."
-대우그룹이 해체됐지만 사회에 기여한 점도 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요즘 5,6년 후 우리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대우처럼 겁 없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도전하는 기업이 없으니 미래가 불안한 것이지요. 김 회장은 사업가로서 비참한 상황을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어느 기업가보다 도전 정신이 많았던 분입니다. 대우는 망했지만 대우가 추구했던 그런 도전 정신만이라도 지켜졌으면 하는 게 우리의 바람입니다. 마음 고생 할 만큼 했고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대우의 공과(功過)라도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익원 기자 iklee@h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