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손학규씨의 경우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洪準亨 < 서울대 교수·공법학 >
한국의 정치시장은 목하 대목을 맞이하고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大選)주자로 꼽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탈당으로 손익계산이 한창이지만,그 파문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제부터 시장의 혼돈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마치 지난 4년의 역정이 오로지 12월의 대선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듯 대선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을 거듭하며 아직도 묘안을 찾지 못한 여권,아니 범여권이 반색을 하며 환영을 하는 가운데,야권은 여론의 추이를 주시하며 주류(主流) 언론들과 더불어 배신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거의 정권교체를 확신하던 야당은 이른바 '이인제 효과'를 경계하며 손 지사 탈당의 여파를 최대한 축소시키려 한다.
따지고 보면,손 지사의 탈당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획득에 근접해 있다고 믿는 한나라당의 상황인식과 대선주자로 나선 그 대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비춰 볼 때,대선후보 선출방법을 둘러싼 협상이 화합(和合)의 축제로 끝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안에서는 '장렬한 죽음'조차 불허됐기에 배신자란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밖으로 나가 고단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이해득실의 게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손 지사의 정치 성향이 과연 한나라당,특히 선두권 대선주자들로 대변되는 그 당의 정치노선과 부합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재야(在野) 진보권의 시각에서 의심을 샀던 정치인 손학규의 보수성향 못지않게 한나라당 주류보수의 시각에서 우려했던 진보 또는 중도진보의 성향이 더 컸었던 게 사실이다. 손 지사의 탈당을 원래부터 예고된 일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을 이념적 스펙트럼에 위치지워 비교하는,정치학자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검사방식에 따르면,그는 보수우파로부터는 확실히 멀고 오히려 진보우파와 더 가깝게 나온다. 그런데도 그는 한나라당이라는 세포막 안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가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가 판치는 낡은 정치구조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며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조하겠다고 외친 것은,주류언론은 또 다른 배신의 정치라고 질타하지만,삼투압으로 이제 세포막을 벗어난 셈일 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군정(軍政)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당'으로 지목된 한나라당이 발끈 맹렬히 반발한 일이나 범여권에서 '용기있는 결단'이라며 반긴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정계입문시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밝힌 "내가 무엇이 되는지를 보지 말고,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지켜 봐 달라"는 그의 말대로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 경제 부문에서 파주 LG필립스LCD 공장 유치를 비롯해 외자(外資)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역대 그 누구보다도 혁혁한 업적을 쌓음으로써 결코 무능하지 않은 중도진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과연 그가 비전 있고 유능한,신뢰 받는 중도를 창조할 것인가,그 대의명분을 실현시키는 데 정녕 '한 알의 밀알'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외형이 커지고 한없이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룰에 따른 공정한 게임과 결과에 대한 승복,승자 독식(獨食)의 극한투쟁 대신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생의 정치로 대표되는 내포적 민주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 계절 '100일 민심대장정'에 나서 턱수염이 덥수룩했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탈당의 변에서도 밝혔듯 '국민의 바다 속에서 깊이 느꼈던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그리고 그 분들의 삶 속에 배어있는 눈물과 꿈'을 떠올렸다던 그의 말도 믿고 싶다. 그러나 그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나'를 버리고 그 길을 간다면,사람들은 언젠가는 진정 아낌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한국의 정치시장은 목하 대목을 맞이하고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大選)주자로 꼽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탈당으로 손익계산이 한창이지만,그 파문의 크기와 상관없이 이제부터 시장의 혼돈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마치 지난 4년의 역정이 오로지 12월의 대선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듯 대선주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암중모색(暗中摸索)을 거듭하며 아직도 묘안을 찾지 못한 여권,아니 범여권이 반색을 하며 환영을 하는 가운데,야권은 여론의 추이를 주시하며 주류(主流) 언론들과 더불어 배신의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기 시작했다. 거의 정권교체를 확신하던 야당은 이른바 '이인제 효과'를 경계하며 손 지사 탈당의 여파를 최대한 축소시키려 한다.
따지고 보면,손 지사의 탈당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정권획득에 근접해 있다고 믿는 한나라당의 상황인식과 대선주자로 나선 그 대주주들의 이해관계에 비춰 볼 때,대선후보 선출방법을 둘러싼 협상이 화합(和合)의 축제로 끝나리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안에서는 '장렬한 죽음'조차 불허됐기에 배신자란 비난을 무릅쓰더라도 밖으로 나가 고단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이해득실의 게임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손 지사의 정치 성향이 과연 한나라당,특히 선두권 대선주자들로 대변되는 그 당의 정치노선과 부합되는지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보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재야(在野) 진보권의 시각에서 의심을 샀던 정치인 손학규의 보수성향 못지않게 한나라당 주류보수의 시각에서 우려했던 진보 또는 중도진보의 성향이 더 컸었던 게 사실이다. 손 지사의 탈당을 원래부터 예고된 일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유력 대선주자들을 이념적 스펙트럼에 위치지워 비교하는,정치학자나 언론에서 즐겨 사용하는 검사방식에 따르면,그는 보수우파로부터는 확실히 멀고 오히려 진보우파와 더 가깝게 나온다. 그런데도 그는 한나라당이라는 세포막 안에 꽤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런 그가 '무능한 진보와 수구 보수가 판치는 낡은 정치구조 자체'를 교체해야 한다며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선도할 새로운 정치질서를 창조하겠다고 외친 것은,주류언론은 또 다른 배신의 정치라고 질타하지만,삼투압으로 이제 세포막을 벗어난 셈일 뿐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물론 '군정(軍政)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 행세를 하는 당'으로 지목된 한나라당이 발끈 맹렬히 반발한 일이나 범여권에서 '용기있는 결단'이라며 반긴 것도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문제는 정계입문시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밝힌 "내가 무엇이 되는지를 보지 말고,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지켜 봐 달라"는 그의 말대로 앞으로 그가 무엇을 하느냐에 있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 경제 부문에서 파주 LG필립스LCD 공장 유치를 비롯해 외자(外資) 유치와 일자리 창출 등 역대 그 누구보다도 혁혁한 업적을 쌓음으로써 결코 무능하지 않은 중도진보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정작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것은 과연 그가 비전 있고 유능한,신뢰 받는 중도를 창조할 것인가,그 대의명분을 실현시키는 데 정녕 '한 알의 밀알'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외형이 커지고 한없이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룰에 따른 공정한 게임과 결과에 대한 승복,승자 독식(獨食)의 극한투쟁 대신 대화와 협상을 통한 상생의 정치로 대표되는 내포적 민주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지난 계절 '100일 민심대장정'에 나서 턱수염이 덥수룩했던 그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탈당의 변에서도 밝혔듯 '국민의 바다 속에서 깊이 느꼈던 낡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그리고 그 분들의 삶 속에 배어있는 눈물과 꿈'을 떠올렸다던 그의 말도 믿고 싶다. 그러나 그 길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다. '나'를 버리고 그 길을 간다면,사람들은 언젠가는 진정 아낌없이 그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