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농업이 막판 협상의 발목을 잡을 '암초'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칠레 등 많은 FTA에서 농산물 개방 예외를 인정해준 적이 없는 미국은 '예외 없는 개방'을 주장하고 있지만 농업 협상을 전담하는 농림부가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진전이 없다.

특히 협상단이 농업 협상을 농림부에만 맡기고 농림부는 '농민단체'의 눈치를 보느라 책임 회피에 급급한 상황이어서 전체 협상에 악영향을 주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자세를 적극적으로 전환,영향이 적은 일부 농산물을 △자동차 관세 철폐 △섬유 개방 등 한국이 원하는 사안을 관철시킬 협상 카드로 고려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고 있다.


◆농림부 전담…지지부진한 협상

협상 초 한국은 농업분야에서 1531개 농산품(HS코드 10단위 기준) 중 300여개를 민감품목(개방 예외나 관세 장기 철폐)으로 분류했다.

여덟 차례의 협상과 차관보급 협의에도 현재 예외 235개(실품목 수 25개) 등을 포함해 민감품목 280여개가 남아 있다.

진척도가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이는 협상을 전담하고 있는 농림부가 개방에 매우 소극적인 데다 미국도 '예외 없는 개방' 원칙에서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서다.

쇠고기 문제가 대표적이다.

'뼛조각'으로 인한 쇠고기 재수입 문제 때문에 협상 분위기가 악화돼 무역구제 개선 등의 요구가 힘을 얻지 못하는 등 전체 협상에 악영향을 주고 있지만 농림부는 해결 의지가 약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솔직히 얘기하면 쇠고기는 어차피 수입해야 한다.

호주산을 먹느냐,미국산을 먹느냐는 차이뿐이다.

뼛조각 가지고 그렇게 정치적으로 유세를 부릴 일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른 품목도 마찬가지다.

농업 협상단 관계자는 "실제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렌지 사과 포도 고추 마늘 양파 낙농품 등 10여개(HS 10단위 기준 100여개)만 제외한다면 사실상 농업에 피해는 없다"고 설명했다.

가장 피해가 큰 쇠고기의 경우도 농촌경제연구원이 추정한 농산물 생산 감소액을 보면 연간 생산액 2조99억원 가운데 생산 감소액은 한 해 1960억원이며,관세(40%)가 완전 철폐되더라도 5300억원에 그친다.

특히 정부는 한·미 FTA 체결 등 농업 개방에 대비해 119조원 투·융자 계획 등의 예산을 통한 지원과 한·칠레 FTA 체결 당시처럼 특별법을 근거로 한 농업피해 보상 대책 등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막판 개방 불가피

"마지막까지 남게 될 쟁점은 우리는 농업,미국은 자동차"란 김종훈 수석대표의 말처럼 미국이 농산물 시장 개방 없이 협상을 타결할 리는 만무하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종 순간 개방 리스트를 꺼내들 것이 분명하고 우리가 타결하려면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미국은 1998년 한·미 자동차 협상,슈퍼 301조 협상 등에서 이런 식으로 자기 뜻을 관철해왔다.

협상단 관계자는 "양쪽이 농업 때문에 협상을 깰 순 없고 어떻게든 타결지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책임있는 자세로 전환해 농산물 개방을 카드로 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이 원하는 핵심은 농산물인데 농림부에만 맡겨두고 있어 한국으로선 협상 카드로 쓸 게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