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어느 父子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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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文行 < 수원대 교수 moonhlee@suwon.ac.kr >
얼마 전까지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멀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입양됐던 아이들과 친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이들이 헤어지게 된 사연을 보면 구구절절이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미아(迷兒)가 되어 입양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갓난 아기 때 입양됐다가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 돌아온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해요"란 말을 더듬거리며 그를 찾아온 친어머니를 감싸 안는다.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하는 생모(生母)에게서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죄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이 부분에 이르면 제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시청자라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제어할 수 없다.
특히 두 주인공인 입양아와 친부모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에는 완전히 감정 이입(移入)이 돼 서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며칠 전 한국 입양아 출신인 미국 스키 스타가 26년 만에 친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들 역시 구레나룻까지 꼭 빼닮은 영락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어서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자신의 잘 자란 모습을 보여드리러 왔다며 오히려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한다고까지 말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를 멀리 입양 보낸 것만도 미안한데,부모에 대한 원망은 고사하고 재단을 설립해 한국의 고아와 입양아를 돕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우리가 몹시 냉대했던 혼혈아들이 미국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면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방문해 혼혈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사는 것이 고단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많은 것들에 눈 감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혹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조차 돌보지 못하고 멀리 떠나보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한국의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의 부적응자로 살아갔을 것인가.
요즘 동남아시아 등지에 한국인들이 진출하면서 그들이 현지 아내와 낳은 2세들이 버려진다는 보도를 간혹 접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언제까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방치해야 할 것인가.
얼마 전까지 재미있게 보았던 TV 프로그램이 하나 있다.
멀리 미국이나 유럽으로 입양됐던 아이들과 친부모를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인데,이들이 헤어지게 된 사연을 보면 구구절절이 못 살고 못 먹던 시절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경우가 태반이다.
미아(迷兒)가 되어 입양된 안타까운 사례도 있다.
갓난 아기 때 입양됐다가 스무 살이 훌쩍 넘어서 돌아온 그들은 하나같이 "사랑해요"란 말을 더듬거리며 그를 찾아온 친어머니를 감싸 안는다.
얼굴조차 들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을 계속하는 생모(生母)에게서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죄스러움을 읽을 수 있다.
이 부분에 이르면 제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시청자라 해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제어할 수 없다.
특히 두 주인공인 입양아와 친부모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에는 완전히 감정 이입(移入)이 돼 서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며칠 전 한국 입양아 출신인 미국 스키 스타가 26년 만에 친아버지를 만나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됐다.
이들 역시 구레나룻까지 꼭 빼닮은 영락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어서 보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했다.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아들은 자신의 잘 자란 모습을 보여드리러 왔다며 오히려 아버지의 상황을 이해한다고까지 말했다.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를 멀리 입양 보낸 것만도 미안한데,부모에 대한 원망은 고사하고 재단을 설립해 한국의 고아와 입양아를 돕겠다는 다짐까지 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때 우리가 몹시 냉대했던 혼혈아들이 미국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르면서 어머니의 나라 한국을 방문해 혼혈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사는 것이 고단해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많은 것들에 눈 감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혹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차가운 눈초리를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조차 돌보지 못하고 멀리 떠나보냈다.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한국의 부모를 원망하고 사회의 부적응자로 살아갔을 것인가.
요즘 동남아시아 등지에 한국인들이 진출하면서 그들이 현지 아내와 낳은 2세들이 버려진다는 보도를 간혹 접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을 언제까지 이렇게 무책임하게 방치해야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