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星來 < 한국외대 명예교수·과학사 >

"저는 앨 고어입니다. 하마터면 미국 대통령이 될 뻔했습니다." 이런 농담으로 시작한다는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 큰 상을 받았다. 지난달 26일 제79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지구 온난화(溫暖化)를 경고하는 미국 전 부통령 고어의 작품이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주제가상을 받은 것이다.

그와 함께 시상식장에 나타난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고어를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처할 뛰어난 지도자"라고 소개해 관중의 큰 박수를 받았다.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더 많은 표를 얻고도 특이한 미국의 선거제도 때문에 억울하게 "미국 대통령이 될 뻔했다가 만" 그가 환경운동가로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장면이었다.

환경운동가인 고어는 지구 온난화가 불러온 심각한 환경위기를 전 인류에게 알리고자 모든 지식과 정보를 영상(映像)에 담아냈고,그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것이다. 고어의 설명처럼 지구온난화의 진행 속도와 영향력은 심각하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지난 겨울을 유난히 푹하게 보낸 것도 지구 온난화 때문일 듯한 걱정도 든다.

지구가 자꾸 더워지고 있는 원인은 바로 인간의 과소비 때문이다. 사람들이 소비생활을 높일수록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온실 가스는 더 많이 생산되고,그 결과 북극의 빙하(氷河)는 10년마다 9% 정도씩 녹아 버린다.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미국의 플로리다나 중국의 상하이 등 세계 곳곳의 해안도시가 바다 속으로 잠기기 시작할 것이며,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고어의 주장대로라면,2005년 미국 남부를 강타한 '카트리나' 같은 초강력 허리케인도 2배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는 겨우 몇 십년 안에 이런 끔찍한 미래가 인류를 기다리고 있다고 경고한다. 좀 과장된 듯하지만,고어의 영화는 심각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실천하고 행동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고 앨 고어는 말한다. 전 세계를 돌며 그는 기후변화의 시한폭탄을 경고하고 다녔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이번에는 영화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영화로 그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다음날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그를 '위선자'로 고발하고 나섰다. 테네시의 정책 연구소 소장 드류 존슨은 2006년 한 해 동안 고어는 자기 집 전기세로만 1500만원 정도나 썼다는 것이다. 좋은 집에서 잘 사는 사람이 더 많은 전기를 쓰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한 해에 전기료가 1000만원이 넘는다 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평소에 대단한 환경론자로 활약하고 있고,이번 수상작(受賞作) 영화도 바로 환경 보호를 외치고,지구 온난화 문제를 경고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상식 단상에 오른 고어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는 보도다. 올바른 말이다. 환경운동은 다름 아닌 절약 운동이어야 하고,그러기 위해서는 그 지도자부터 절약해 사는 모습을 보여야 도덕적이지 않은가? 바로 이 부분에서 고어의 행동에는 자기모순이 드러난다.

지구 온난화를 비롯한 환경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서는 인간은 소비를 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고어가 스스로 시상식장에서 말했듯이,환경문제는 도덕적 문제다. 그렇다면 미국 평균가정의 20배 이상의 전기를 쓰고 있는 고어는 환경에 대해 떳떳하게 말할 자격이 없는 셈이 된다. 방 20개에,전기 보일러로 물을 데워주는 수영장에,가스불 랜턴까지 갖춘 저택에 살면서 환경문제를 말한다는 것은 '위선자'소리를 들어 마땅할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환경운동은 어떤 현실에 놓여있을지 생각해 본다. 과연 세상의 어느 누가 남보다 에너지도 덜 쓰고 절약하며 사는 환경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한국의 환경운동자들은 또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