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중순 최장기 미해결 국책사업이었던 '방폐장(放廢場)'을 유치한 경주를 현장 답사했다. 과거 천년왕국 신라의 수도였고 현재도 손꼽히는 관광도시이지만 그동안 경제적으로 침체됐던 경주가 방폐장 유치를 계기로 어떠한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방폐장은 흔히 말하는 사회적 님비(NIMBY)시설로,지역의 자발적 유치를 기대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부는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역불만을 상쇄할 수 있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해 지역이 방폐장 유치에 따른 득실을 냉철히 따질 수 있도록 했다.
'실'보다는 '득'이 클 것이라고 판단한 경주,군산,영덕,포항 등이 방폐장 유치를 신청하면서 경쟁구도가 형성됐고,결국 주민투표를 통해 2005년 11월 찬성률 89.5%라는 단합된 시민의 힘으로 경쟁 시·군을 제치고 경주가 방폐장을 유치했다. 물론 한전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및 협력업체 이전,특별 지원금 등 다양한 지원사업이 침체된 지역경제를 발전시킬 거라는 기대감이 높은 찬성률로 나타났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경주시 일원 곳곳에 걸린 한수원 본사 이전 반대 현수막을 보면서,또한 유치지역지원계획에 대한 경주지역의 반발 분위기를 느끼면서,경주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음에도 시민들은 왜 분열하고 반발하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당시 정부로서는 방폐장 유치에 대한 경제적 인센티브가 지역에 주어지기만 하면,지역 내 충분한 논의를 통해 각종 지원사업이 원활하고 효율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경주에서는 양성자가속기 설치부지 선정 및 한수원 본사 이전부지 선정 문제 등에서 소지역 이기주의로 인한 지역 내 분열과 갈등이 일어났다. 또 이런 불만들이 유치지역 지원계획 수립과정에서 분출되고 있는 듯 보였다. 최대한 많은 지원을 얻어내 지역경제의 발전을 이루려는 경주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국민의 세금으로 이뤄진 한정된 예산으로 지원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정부의 처지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서로가 서로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는지의 여부다.
서로가 마음의 문을 닫고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음에도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죄수(罪囚)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경주의 요구에 대해 경주시민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과 정보를 제공하고,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수용할 수도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또한 경주는 많은 지원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추상적인 지원계획을 경주의 중장기 발전방향과 연계해 구체적인 사업계획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하고,정부 입장을 정확히 파악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경주시는 서로 협의하고 협조해 방폐장 건설을 원활히 추진하면서도 경주시의 발전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공생(共生)관계의 파트너이며,이러한 인식하에 상호신뢰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번 답사를 통해 지역주민들이 기피하는 시설에 대한 국책사업 추진은 지역갈등을 초래하지만,지역갈등으로 인한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인센티브로서의 지역지원사업도 지역갈등을 동반할 수 있으므로 사전(事前)에 정부와 해당지역이 상호 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틀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지원사업으로 인한 지역갈등은 지역 내에서 또는 정부와의 원만한 협의를 통해 해결할 문제이지 본래의 국책사업 추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역 내 갈등과 반발을 조속히 치유해서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원사업이 경주의 명예를 되살리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도록 경주 시민의 대승적(大乘的)인 정신과 결집된 힘을 다시 한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