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갤러리] '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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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점심으로 밀국수를 삶는다
펄펄 끓는 물속에서
소면은 일직선의 각진 표정을 풀고
척척 늘어져 낭창낭창 살가운 것이
신혼 적 아내의 살결 같구나
한결 부드럽고 연해진 몸에
동그랗게 몸 포개고 있는
결연의 저,하얀 순결들!
엉키지 않도록 휘휘 젓는다
면발 담긴 멸치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코 밑 거뭇해진 아들과 겸상을 한다
친정 간 아내 지금쯤 화가 어지간히는
풀렸으리라
-이재무 '국수'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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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하루 세끼씩 거의 빠짐없이
챙겨먹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보면 경악하고 만다.
그 많은 음식을 누가 무엇으로 만들어 주었던가.
그 엄청난 양을 먹어치운 만큼 가치 있는 삶을
살았나.
나이를 먹을 수록 복잡미묘한 맛 보다는
순수한 맛 쪽으로 기우는 스스로를 보고 슬쩍
웃곤 한다.
'소면'도 그 중 하나다.
무엇보다
조리과정이나 먹는 방식이 단순명쾌해서 좋다.
있는 듯 없는 듯 늘 곁을 지켜주는 ‘아내’ 같은
음식이다.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