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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말은 인류역사의 용광로였다.

유럽각국은 일제히 아프리카, 아시아 국가 침략에 나섰다.

서구열강은 총칼로 무장했고 미국과 일본도 이 침략의 대열에 동참했다.

경제사적으로 보면 산업화된 국가가 비산업화 국가를 지배한 시기였다.

약육강식의 논리 앞에서 한반도는 맛있는 먹잇감에 불과했다.

그리고 21세기초인 오늘. 제국주의의 역사는 새롭게 쓰여 지고 있다.

국가는 뒤로 빠지고 기업이 전면에 나섰다.

무기는 '기술'이다.

막대한 돈을 연구ㆍ개발(R&D)에 투자하고 신기술, 일류기술로 무장한 기업들이 경제 영토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시장점유율에서 밀린 기업, 시장을 빼앗긴 국가는 피지배의 경제 운명이 기다리고 있다.

바야흐로 '기술 제국주의 시대'의 막이 오른 것이다.

기업생존을 가늠하는 바로미터는 기술개발이다.

새로운 기술로 신상품을 만들어 발 빠르게 대응하는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기업은 자연도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기술은 기업의 핵심자산이며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다.

1등 기술은 초기 시장에서 초과 이윤을 보장받고, 이렇게 형성된 자본은 새로운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로 이어진다.

후발기업이 어렵게 해당 기술을 개발해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이미 초과이윤은 사라지고 없다.

이른바 '1등 기술의 순환구조'가 지속되면서 기술전쟁에서는 1등만이 살아남게 된다.

기업들마다 핵심기술 개발을 최상의 과제로 설정하고 거액을 쏟아 붓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술개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응용'이다.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전환' 같은 신기술이 아닌 한 '창조적 모방'도 언제나 가치 있는 명제다.

일본 소니는 '영원한 모르모트' '일본주식회사의 연구소'로 불린다.

기술과 제품 개발력이 뛰어나다는 수사들이다.

그런 소니도 처음에는 기술 모방에서 출발했다.

소니의 세계적인 첫 작품은 주머니에 들어가는 소형 '포켓' 라디오.

도쿄통신공업(소니의 전신)은 48년 벨연구소가 만든 트랜지스터에 주목하고 53년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진공관 대체부품으로 관심을 가진 것이다.

특허권만을 사들인 도쿄통신공업은 문헌에만 의존해 트랜지스터라디오를 탄생시켰다.

트랜지스터 기술을 창조적으로 모방, 신제품을 탄생시킨 셈이다.

카메라의 대명사로 불리는 일본 '니콘'도 유사한 탄생신화를 갖고 있다.

독일의 카메라 기술을 모방했다는 점에서다.

'일본광학'(니콘의 전신)은 창업직후 독일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데려왔다.

전부 월급의 2~3배를 주는 파격적 조건이었다.

이때 카피한 독일 카메라 기술이 오늘날 니콘의 밑거름이 됐다.

물론 창조적 모방에도 전제조건은 있다.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이다.

일본 전자제품 유명 메이커 샤프(SHARP)의 전신인 하야카와 금속공업연구소는 지난 25년 광석라디오의 분석 연구 끝에 소형 광석라디오를 개발했다.

당시 광석라디오 회사들은 밀려드는 수요에만 만족하고 향상된 제품 개발에는 무관심했다.

반면 하야카와는 진공식 라디오인 샤프다임(SHARPDIGM)을 내놓는 발 빠름을 보였다.

이후 하야카와만 생존했음은 물론이다.

트리니트론 브라운관 TV, 워크맨 등으로 제품개발을 선도했던 소니도 지난 80년대 생존의 기로를 경험한바 있다.

유사제품이 봇물 터지듯 뒤 따른 데다 오일쇼크까지 겹친 탓이었다.

만약 소니가 몇 가지 신기술에 안주했다면 미국 컬럼비아 영화사나 CBS 레코드를 과감히 사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혁신적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신기술을 개발해내지 않으면 세계 일류가 될 수도 없고 생존도 불가능한 시대를 살고 있다.

'혁신을 바탕으로 창조적 모방을 리드하는 기업' 일류기업의 명성은 바로 여기서 얻어진다.

양승현 기자 yangs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