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해 동안 노동현장은 불법 시위로 큰 홍역을 치렀다.

노동계 안팎에선 공권력 실종과 정부의 무원칙한 대응이 불법 시위를 부추겼다고 분석한다.

공권력이 뒷짐을 지다 보니 파업이 여기저기서 터졌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노동현장에선 법과 원칙을 지키며 불법 파업에 강력히 대응했던 '원칙맨'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의 행정 스타일을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높다.

노사관계를 연구하기 위해 오는 3월5일 6개월 일정으로 호주로 떠나는 김 전 장관을 만나 우리나라 노동운동 및 노동행정의 문제점과 해법 등을 들어봤다.

대담=윤기설 노동전문기자


-고교(계성고) 동창이면서 장관 재직 시절 여러차례 충돌했던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는 자주 만나시는지요.

"가끔 만나고 연락하는 사이입니다. 어떤 직함을 맡다 보면 공적인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충돌할 수 있지요.개인적으로 아무런 감정 없습니다. 가끔 이 위원장도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이 합법 파견 판정을 받은 KTX 여승무원을 철도공사에서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 자체가 실수라고 봅니다. 적절치 않았습니다. 어디까지나 노사 자율에 맡겨놔야 할 문제입니다. 정말 사회경제가 취약하다면,정부 차원에서 검토해볼 수는 있겠지만 직접 개입해서 '고용을 해야 한다,말아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불법 파업에 대한 온정적 대응이 노사 갈등을 부추긴다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맞습니다. 특히 불법 시위 때 온정적으로,또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습니다. 이게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탄생한 정통 정부라면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2005년 농민시위 사망사고 때 허준영 경찰청장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도 공권력을 약화시키고 불법 시위를 부추긴 측면이 있지 않나요.

"그렇지요. 당시는 예산 통과를 놓고 민주노동당에서 허 청장 경질을 카드로 활용할 때였던 걸로 기업합니다. 여당과 총리가 그 카드를 받아들인 셈인데,법과 원칙을 정치적 판단과 맞바꿔 버린 셈이죠."

-법과 원칙보다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노동부 장관들이 많습니다.

"대화와 타협은 상대방을 존중하고 적절한 절충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일탈한 주장에 대해서도 대화와 타협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고 봅니다.법은 사회적 공통약속인데,이걸 벗어나서는 안 되지요."

-우리나라 노동운동이 부끄러움을 몰라 과격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노동운동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에겐 전통적으로 아무리 어렵더라도 지켜온 염치라는 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화 과정에서 정당화되고 미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보여준 몰염치는 선진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수준입니다."

-현대차노조가 올해 초에 추가 성과급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는데,이것도 같은 맥락 아닌가요.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분명한 것은 현대차가 추가 성과급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목표실적을 100% 달성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숫자에 엄격해야 합니다. 이걸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염치없는 일입니다."

-현 정부는 분배쪽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라는 용어는 사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제가 만든 것입니다. 이미 오래 전에 존 스튜어트 밀이 생산은 시장의 영역이고 분배는 정치적 영역이라고 했듯이 시장 활성화와 경쟁을 통해서 생산과 성장을 증가시키자는 것이 기본 취지입니다. 그런데 워낙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참여정부가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강조를 많이 했던 것이죠."

-노조의 경영 참여에 대해 어떤 시각입니까."

"우리 현실에서는 독일의 공동 결정제도는 이른 감이 있습니다.노조의 경영 참여는 책임성과 전문성이 전제돼야 합니다. 원래 노사교섭은 이익을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자리가 아니라 생산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자리입니다.그런데 우리 노동계는 이익만을 배타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지난해 2월 퇴임사에서 "물레방아를 거꾸로 돌릴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노동운동 조직을 포함한 대부분의 이익집단에서 나타나는 과두지배체제의 문제를 지적한 것입니다. 소수 주도의 내부 의사 결정 구조는 결국 조직 내 괴리와 사회적 괴리를 불러오게 마련입니다. 거버넌스 체제가 정비되어야 노동운동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시민단체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들만의 노동운동,그들만의 시민운동이라는 얘기인가요.

"저도 시민단체 활동을 해봤지만,모든 견해나 결정이 대다수 구성원의 생각,신념,의식과 자꾸 괴리돼 나온다는 게 문제입니다. 결국 의사 결정 구조의 한계에 부딪쳐 있다는 것이죠."

-최근 온건파인 이석행씨가 민노총 위원장에 당선됐습니다.노동현장이 달라질 것으로 봅니까.

"일단 지켜봐야 겠죠. 위원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곧바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부에서 많은 논의와 토론이 필요할 겁니다. 민노총이 과연 사회흐름과 같이 가고 있는지,내부적 성찰과 검토가 필요할 겁니다."

-법과 원칙으로 대응해서인지 진보학자들의 모임인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에서는 제적을 당한 적도 있는데요.

"민교협은 처음 출발 때와는 달리 너무 정치화되고 변질됐다는 느낌입니다. 의사 결정 구조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경고조치 한다고 하길래,할테면 해보라고 하다가 적당한 시점에 스스로 탈퇴한 겁니다. 비난 광고를 낸 학생들도 민노당원 중심이었고 제자들은 없었어요. 일종의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좌파학자들에 대해 평가하신다면.

"우리나라 좌파학자들은 너무 비겁하고 용기가 없습니다.웬만해선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지 않습니다.할 말을 안 하는 것이죠.말을 하더라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얘기들을 합니다.이념적 스펙트럼에 의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정리=이관우ㆍ사진=김정욱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