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요 며칠 동안은 외환 트레이더들이 긴장했다. 이웃집 술꾼이 밤 늦게 귀가해 벗어던지는 신발 소리를 기다리는 꼴이었다. 드디어 쿵 하고 마지막 한쪽이 벽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일본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0.5%로 인상했다. 기준금리 0.25%로 책정해 제로금리를 마감한 지 7개월 만에 다시 0.25%포인트 올리는 데 한참 뜸을 들였다.

그래도 세계 제2 경제대국의 중앙은행이 정치권의 압력에 굴복해 중앙은행 독립에 먹칠 했다는 국제여론이다. 10여년 장기 침체의 뒤끝인지라 경제회생의 신호를 더 신중하게 지켜보라는 정치권의 압력 섞인 당부가 강했기에 후쿠이 총재의 결단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거나 이번 조치로 일본은행이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초저금리 실험을 마감하고 금리정책을 정상궤도로 진입시킨 것은 환영할 만하다.

최근 원화강세로 무역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서 이번 조치로 당장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당일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이 오히려 100엔당 3원25전 반등했고,증권시장에서 종합주가지수가 1.58포인트 빠졌다.

일본은행 기준금리가 금번 인상조치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과는 4.75%포인트,유로존과는 3%포인트,그리고 한국 콜금리와는 4%포인트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물과 반대로 자금은 금리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찾는다.

일본자금이 국내외 투자자들의 손길을 따라 해외로 출타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현재 전 세계 통틀어 약 1조달러 규모일 것으로 추산된다. 벌어진 금리 격차가 얼마나 더 좁혀질 때 일본자금 복귀(언와인드)가 가시화될지,그 충격이 하드랜딩일지 소프트랜딩일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드랜딩일 경우 일본발(發) 세계불황 시나리오를 무시할 수 없다.

근래 미국이 중국 인민폐의 환율조작은 시비하면서 일본 엔·달러화의 약세화에 대해서는 눈감아주고 있다. 최근 개최된 선진국 재무장관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그만큼 경제외교가 중요하다는 뜻이 감지된다. 한편 한국 원화는 최근 수년간 간헐적으로 중앙은행의 시장개입 손길이 보였지만 별무효과였고 강세화가 지속되었다. 결과적으로 국내 유동성을 풀어 외환보유를 쌓아 올리고,원·엔 환율이 환란 이후 가장 낮은 100엔당 780원 수준에 이르고 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환율 때문에 경제 죽는다는 소리가 나오게끔 되었다. 그러나 대(對)일본 교역에 대한 환율효과의 양면성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한국처럼 대일본 부품수입이 큰 경우 낮은 환율이 기업이익에 플러스되는 측면이 있다. 한편 낮은 환율 때문에 고전하던 대일본 수출기업은 금번 금리인상으로 숨구멍이 좀 열리게 되었다. 저금리의 희생자이던 일본 소비자들의 씀씀이가 점차 살아난다면 대일본 수출은 기지개를 펼 수 있다.

가장 궁금한 건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국내 진출 규모이다. 얼마나 될까? 언제 얼마나 떠날 것이고 그 충격은 어떠할까? 만일 전 세계적으로 언와인딩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한국증시에만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향후 한국증시의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해진다.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엔화는 향후 2,3년 안에 20% 정도 절상된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계산을 가지고 기업하면 망하지 않는다. 요즘 경제의 어려움을 환율 탓으로 돌리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다. 환란을 극복했다고 장담하려면 환란 전 환율수준을 견뎌낼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한국경제의 어려움은 환율,국제원자재,통상압력, 중국·인도 등 신흥국 추격의 외부요인보다도 국내요인에 있다. 경제 지휘탑의 혼미,법질서 부재,상호간 불신,갈등,편가르기,정치놀음 등 내부요인이 주범이다. 기업들이 집단자살하는 막다른 국면에 몰린 듯 섬뜩한 느낌이 들 만큼 기업 죽이기 분위기가 만연하다. 애국심의 이름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