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털어 아파트에 詩사랑방 … 블로그詩會 여는 대만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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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중심가.
둔화난루(敦化南路) 2가의 한 아파트 5층에 '쥐스시안'(聚詩軒)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은 중견 시인 팡밍(方明·53)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시인들의 사랑방.규모는 40여평,집값은 한국 돈으로 8억원 정도다.
거실 한쪽 벽에는 이 집을 사서 시인들의 사랑방으로 꾸미게 된 동기를 담은 서예가 겸 시인 쉬수이푸(許水富)의 액자가 걸려 있다.
'팡밍의 서재가 좁아 무릎을 맞대고 앉아야 하지만 언제나 밝은 달이 비추인다.'
이곳에 '시의 집'을 마련한 팡밍은 대만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한 뒤 귀국,프랑스계 현지법인을 운영하는 CEO(최고경영자) 시인.
문학적 열정도 뜨겁지만 다른 문인들에 비해 수입이 나은 편이어서 자기 돈으로 도심 문학관을 만든 것.
그는 문예지 발간이나 시낭송회,뒤풀이 행사에도 늘 자리를 함께하며 가난한 동료들 대신 밥값을 치른다.
이곳에는 원로 시인이자 화가인 린환창(林煥彰·68) 등 여러 문인이 드나들며 문학적 향기를 나눈다.
지난 1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신간 동시집 '멍수이완(夢和誰玩)'의 사인회를 열기도 한 린환창 시인은 대만 일간지 '세계일보' 문화부 편집위원직에서 은퇴한 후 계간 문예지 '첸쿤'(乾坤)의 발행인과 총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국과의 문학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에도 소개됐다.
팡밍 역시 '첸쿤'의 동인이자 한국 문단에 이름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만의 '전통 서정시 되살리기'와 '아시아 문인들과의 소통'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첸쿤'의 편집을 맡고 있는 쯔쥐안(紫鵑·39) 시인도 이들과 자주 어울린다.
마스크 제작 회사의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난생 처음 본 함박눈과 돌솥비빔밥을 잊을 수 없다"며 "한국 시인들과의 교류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첸쿤' 창간 10주년 기념식에서 이들은 "새롭고 실험적인 현대시의 매력도 좋지만 요즘 시는 너무 가벼워 걱정"이라며 "전통 서정시의 본령을 되찾자"고 입을 모았다.
현대적인 감각을 살리면서 시의 근본 바탕을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린환창 시인은 젊은이들 20여명과 함께 '행동독시회'를 결성,블로그에 올린 회원들의 시를 읽고 토론하며 월 1회 전통 서정시의 참 맛을 살린 우수작을 뽑아 시집으로 엮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시적 전통이 살아 있는 한국 문인들과의 교류협력 방안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번 1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국의 김태성(金泰成) 시인(계간 '시평'기획위원·호서대 겸임교수)은 "대만의 문학적 수준이 높고 문화 인프라가 잘 돼 있어 양국 간 교류 폭을 넓힐 방법을 함께 찾아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타이베이=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