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 말이 되면 마음 속으로 간절히 빈다. "속상하고 힘든 일은 올해로 끝나고 새해엔 좋은 일만 가득하게 하소서." 1월에도 신통한 소식은커녕 일이 풀리는 기미가 안보이면 설날을 기다린다. "한국 사람한테 새해는 아무래도 음력 정월부터지. 설이 지나면 모든 게 나아지겠지. 암,그렇고 말고."

그러다 섣달 그믐이 되면 기분이 착잡해진다. "이제부터는 다 잘될 거야" 되뇌지만 마음 한켠에서 불쑥불쑥 "만일 그렇지 않으면" 싶은 두려움이 솟는 것도 어쩌지 못한다. 그래도 불안보다 설렘 쪽에 무게를 두는 건 희망이야말로 모든 힘의 원천이요,뭐든 열심히 꿈꿔야 이뤄진다는 걸 믿는 까닭이다.

묵은해를 보내면서 빛나는 새해를 기대하는 건 누구라도 비슷할 것이다. 사는 동안 수없이 많은 날에 '혹시나' 했던 일이 '역시나'로 물거품이 됐더라도 새해를 맞는 마음은 소망으로 가득찬다. 집안을 청소하고,책상을 정돈하고,정성 들여 목욕하고,해맞이를 위해 멀리 정동진까지 가는 것 모두 "올해엔" 하는 열렬한 바람 때문일 게 분명하다.

섣달 그믐이다. 내일이면 정신없이 허둥대며 살아온 경술년(庚戌年)이 돌아올 수 없는 날들 속에 파묻히고 새로운 정해년(丁亥年)의 첫날이 밝는다. 설 연휴의 끝날은 봄바람이 불고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는 우수다. 바람은 매섭겠지만 들과 산은 어김없이 푸르러질 테고 머지않아 꽃망울도 터질 것이다.

'인간은 살아 노력하는 동안 방황하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괴테 '파우스트'). 살다 보면 섣달 그믐에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자신과의 약속이 작심삼일로 허무하게 끝나는 수도 숱하고,새해엔 잘될 걸로 철석같이 믿었던 사안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로 어긋나고 삐끗하는 것도 다반사다.

그렇지만 아무 결심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낫고,포기하지 않고 애쓰면 성사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 기억하면서 말이다. '8할만 먹어라/세상 음식 8할에 꿈을 2할 섞어라…팔순의 아버지/꿇어앉은 아들 여섯 고명딸 하나/지금이 모두 전성기라는 걸 알아라/따로 행복이 없다는 것을 알거라.'<박해선 '말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