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桂燮 < 서울대 교수·경영학 >

1997년 영국 왕실은 다이애나 왕세자빈의 사망과 함께 뜻밖의 위기에 처했다. 누구보다도 여왕을 아끼고 사랑하던 국민들이 일제히 등을 돌렸다. 그의 처신이 못마땅하다는 이유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건만 엘리자베스 2세는 왕실의 이름으로 조의(弔意)를 표하기를 거부했다. 여왕은 1952년 왕위에 오른 뒤 반 세기가 넘게 국민들과 동고동락을 함께 한 자신이야말로 누구보다도 영국 국민들을 잘 이해한다면서 조의를 표하고 말고를 결정하는 것은 왕실 고유의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여왕의 고집이 계속될수록 여론은 악화됐다. 드디어 신임 블레어 총리의 제안을 받아들여 조의를 표한다고 하자 언론은 여왕이 총리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비아냥거렸다.

지난해 유럽과 미국에서 커다란 화제를 모은 영국 스테판 프리어스 감독의 영화 '여왕(The Queen)'의 이야기다. 영화는 왠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게 느껴진다.

지난달 9일 느닷없이 개헌안(改憲案)을 내놓은 노무현 대통령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이를 관철시킬 모양이다. 임기가 채 1년도 남지 않았고 여당은 반으로 쪼개지고 야당이 제1당이 된 상황에서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를 받더라도 국민투표에서 다수표를 얻을 가능성은 낮다. 각종 여론조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60% 이상의 국민들은 중임제(重任制) 개헌은 현 정부 임기 중에 처리해야 할 사안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고집은 마치 엘리자베스 2세의 고집을 연상시킨다. 안타까운 일이다. 법률 공부를 한 그 자신은 헌법을 따를 뿐이라고 여기는지 모른다. 분명 개헌 제청(提請)은 헌법에 명기돼 있는 대통령 권한의 하나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작동하는 권력은 그렇지 않다.

권력은 얼핏 보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때로는 자가당착적인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살아있는 생명체다. 대통령의 권력은 잃을수록 커진다. 지금은 고인(故人)이 된 하버드대학 교수 리처드 뉴스타트가 언급했 듯이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의 힘이다. 대통령이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남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굽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측근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워싱터니언(Washingtonian)이라고 불리는 엘리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설득의 대상은 바로 국민들이다. 엘리트들은 국민의 여론을 형성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여론에 따라 자신들의 입장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 2세는 이같이 평범하지만 실천에 옮기기는 쉽지 않은 권력에 대한 상식을 뒤늦게나마 받아들였다. 여왕은 런던으로 내려가 죽은 황태자비를 위해 전례가 없는 국장(國葬)을 치러주었다. 그러자 한때 꽁꽁 얼어붙어 있던 국민들의 여왕에 대한 마음이 눈 녹듯이 녹아 내렸다. 영국 왕실의 위기가 극복됐다.

과연 우리 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지혜를 배워올 수 있을까? 고집과 아집으로 일관하기엔 남은 임기는 너무나 짧기만 하다. 자폐증이라도 걸린 듯 국민과 소통을 스스로 차단해 버린 대통령은 대통령 개인의 불행이기도 하려니와 국민 전체의 불행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대통령 이하 국민 모두가 총의를 모아 챙겨야 할 엄청난 과제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기에 대통령은 국민의 여론에 승복할 줄도 알아야 한다.

노 대통령은 영화광(狂)으로 알려져 있다. 바쁜 국정 일정에도 부인과 함께 영화를 챙겨 보아왔다. 그렇다면 다른 영화는 몰라도 이 영국 영화를 보기 바란다. 뒤늦게나마 내려 놓음으로써 더욱 커지는 대통령 권력의 속성(屬性)과 국민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