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설] 올해도 우리 집안 모두 "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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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윤달이 들어 올해는 설이 좀 늦다.
보통은 입춘을 전후해 설이 든다.
어린 날 시골에서 자라고,또 성인이 돼서는 고향을 떠나 있어 그런지 지금도 나는 추석 명절과 설 명절을 어린아이처럼 기다린다.
양가 어른과 형제들끼리 서로 주고받을 선물을 준비하고,또 큰집 작은집 조카들에게 줄 세뱃돈을 새 돈으로 준비하고,출발 전날이나 그 전날쯤 자동차 점검을 하면 고향나들이 준비는 다 된 셈이다.
고향이 대관령 아랫마을이다 보니,설 명절과 고향에 대한 겨울 추억은 언제나 눈과 얼음과 함께 한다.
가을걷이가 끝난 다음 마을에서 제일 큰 논에 물을 대는 것도 어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다.
그렇게 물을 대놓아야 겨우내 그곳에 얼음이 얼어 썰매를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눈이 내리면 경사진 밭이나 경사가 완만한 산으로 가서 우리 스스로 만든 눈썰매를 타거나 비닐 비료포대를 엉덩이 아래에 깔고 하루종일 눈밭에서 뒹군다.
그렇게 신나게 놀다보면 어느 결에 설이 다가온다.
그게 벌써 30여년 훨씬 넘는 세월 저편인 데도 나는 설 명절 준비로 마을 전체가 바쁘고 또 풍족했던 그 시절 축제의 시간을 잊을 수 없다.
집집마다 읍내에 나가 떡방아를 찧어오고,또 집집마다 과줄이며 약과며 깨엿이며 설 음식을 준비하는 내내 어린 우리도 함께 신나고 즐거웠다.
지금은 집앞 가게에만 나가도 한과와 과일이 그득하지만 그때는 떡도 한과도 모두 집에서 만들었다.
겨울에 한 차례 새옷을 얻어 입는 것도 겨울이 막 시작될 때가 아니라 얼음장 밑으로 이제 조금씩 물소리가 들리고 버들강아지가 피어나는 바로 지금 설 때였다.
한둘도 아닌 자식들에게 설빔을 해주기 위해 부모님은 몇날 며칠 한숨을 내쉬었겠지만 우리는 그 옷 한 벌에 설날 기분을 바로 느끼곤 했다.
서울의 큰 공장에 다니고 있는 삼촌과 고모와 형과 누나도 설 전날이나 전전날 해가 떨어지기 전 선물보따리 몇 개씩 옆에 들고 마을로 들어선다.
어머니 아버지에게 드릴 내복과 담요 밥통을 사오고,동생과 조카에게 줄 옷보따리도 부피가 만만치 않다.
마을의 그런 풍경만으로도 어린 우리까지 마음이 넉넉해지곤 했다.
설날 아침이면 집에서 차례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린 다음 점심 때부터 저녁 때까지는 같은 마을의 대소가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러 다녔다.
지금도 내 고향은 400년 전통의 대동계가 그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마을이라 설날 다음날인 초이튿날이면 온 동네사람이 촌장님댁에 모여 촌장님께 합동세배를 드린다.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런 전통을 지키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고 묻는데 그래도 그런 합동세배를 통해 평소엔 잘 찾아뵙지 못하는 마을 어른들께도 인사하고,선후배도 한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지금도 설 명절에 예전의 친구들이 모이면 하나같이 자연 속에 뛰놀고 자연 속에서 명절을 맞이했던 우리 어린 시절을 이야기한다.
아마도 시골로 설을 쇠러 가는 사람들 모두 그런 추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고향과 설날을 떠올릴 때 나만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이 아니라 아마 이 글을 읽는 분 모두 그런 마음일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 길을 찾아 대처로 떠났다고 해도 고향에 가 보면 정다운 얼굴과 정겨운 산천이 그곳에 있다.
어른들만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다.
어린 날 그곳에서 뛰어놀며 우리가 어느 길섶에 흘렸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옛 추억들이 우리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어른과 함께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냥 명절이어서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고향으로 가는 길 위에서 떠오르는 옛 추억들 역시 이때가 아니면 쉽게 만날 수 없는 우리 생의 빛나는 보석들이 아닐는지.예전에 아버지가 가고,삼촌과 고모,형과 누나들이 들뜬 마음으로 갔던 그 귀성의 길을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것이다.
/이순원(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