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한 서기원씨가 문예진흥원장에 취임했을 때 일이다. 기자회견 중 누군가 "원장이 된 뒤 좋은 점이 있다면"이라고 묻자 "동네사람이 인사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직장을 그만둔 뒤 간혹 낮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니 "뭐 하는 사람이길래"하는 눈으로 흘끔거리던 사람들이 아는 체하더라는 것이다.

점잖은 작가의 솔직한 대답에 참석자들은 잠시 숙연해졌었다. 평소 어떤 자리에 있든 힘주는 법이라곤 없고 세간의 관심에 상관없이 자신의 길을 걷던 이가 이렇게 느꼈을 정도니 막강한 힘을 휘둘렀거나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본 이들은 오죽할까. 하물며 인기를 먹고 산다는 연예인임에랴.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취화선'과 심사위원 대상작 '올드 보이'의 주연 배우 최민식씨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94년 '서울의 달'로 떴을 때는 방송사 로비에서 마주치기만 해도 '점심 먹었냐'고 살갑게 묻던 사람들이 인기가 떨어졌다 싶자 본 체도 안하더군요. 엘리베이터에 탄 동네아줌마들은 요즘 왜 TV에 안나오냐고 묻고."

그러면서 덧붙였다. "칸에 두 번 갔다 왔다고 인생관이 바뀔 일은 없어요. 그냥 영화배우일 뿐이죠. 나이를 더 먹으면 주인공의 삼촌이나 아버지 역으로 밀려나겠지만 그래도 괜찮아요." 왜 아니랴. 천하없는 사람도 사노라면 올라갈 때도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캄캄한 날이 지나면 밝은 날도 온다.

연예인들의 죽음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네티즌의 악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우울증 때문인 수가 많다고 한다. 20대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불안한 나이다. 연령별 사망원인 1위를 보면 10대는 운수사고,20∼30대는 자살,40대 이상은 암이다.

일찍 스타가 된 연예인일수록 불안은 극심할지 모른다. 아무도 찾지 않는 듯하면 심신이 마른 풀잎처럼 바스라질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나쁜 상황도 시간이 지나면 바뀐다.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늘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신이 한쪽 문을 닫을 때는 다른쪽 문을 열어놓는다'지 않는가.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