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솔로몬 왕에게 두 여인이 한 아기를 데리고 찾아와 친엄마를 가려달라고 간청했다. 사연인즉 이랬다. 그들은 한 집에서 똑같이 아이를 낳아 길렀는데,한 여자가 잘못하여 아이를 눌러 죽이고 다른 아기와 바꿔치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서로 생모를 주장하자,왕은 칼을 가져와 아기를 반으로 자를 것을 명령했다. 한 여인은 승낙했지만 다른 여인은 울면서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친엄마가 쉽게 가려진 명판결로 종종 인용되는 대목이다.

재판정에 서는 사람들은 원고든 피고든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한다. 형사범이라면 어쩔 수 없이 죄를 짓게 된 사연을 변명하곤 한다. 판사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하는 하소연들이다. 여기에서 판사들의 애로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법언처럼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를 가지기가 그리 쉽지 않아서다. 때로는 사회현실과 괴리된 법으로 인해 고민을 해야 하고,자구(字句)에 충실한 법적용보다는 '건전한 상식'을 찾으려 애쓰기도 한다.

며칠 전 창원지방법원의 한 판사가 피고인에게 내린 집행유예 판결이 화제가 되는 것도,법으로 재단하기보다 상식에 기초한 현실을 감안했기 때문일 게다. 불을 질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피고인에게 '자살'이란 말을 반복토록 한 뒤,판사는 그말이 '살자'로 들린다면서 그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 네티즌들은 '솔로몬 판사님'이라며 칭찬일색이다.

미국 재판정에서의 일화도 생각난다. 뉴욕시장을 세 번이나 역임했던 과르디아가 판사 시절,한 노인이 절도혐의로 재판정에 섰다. 노인은 너무도 배가 고파서 빵을 입에 넣었다고 했다. 충격을 받은 판사는 이웃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죄가 절도죄보다 더 크다며 10달러의 벌금을 대신 치렀다. 노인의 뺨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요즘 우리 법원은 인혁당 사건 등 과거의 판결들이 뒤집어지고,긴급조치 위반사건을 담당했던 판사명단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다. 시대와 상황을 고려하면서 명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의 고민은 이래저래 깊어질 것 같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