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주인공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은 채 영원히 춤을 춰야 하는 저주를 받았다.

어떤 이는 카렌이 교회를 갈 때도 정숙하지 못한 빨간 구두를 신고 간 것이 종교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돼 형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과거 기독교에서 '욕망'은 금기 사항이었지만 카렌은 빨간 구두에 대한 욕망을 숨길 수 없었던 것이다.

구두 디자이너인 이보현 실장(44)은 구두 중에서 특히 하이힐은 여성들이 섹시하게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도구라고 말한다.

이 실장은 사실 '실장'이 아니라 '사장'이다.

2003년부터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슈콤마보니'를 운영해오고 있다.

'슈콤마보니'는 신발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슈(sue)'와 이 실장의 영어 이름인 '보니(Bonnie)'의 합성어다.

슈콤마보니의 2006년 한 해 매출은 30억원.국내 유명 제화 브랜드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규모다.

하지만 최근 성장 중인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 중에서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디자이너 슈즈'란 구두전문 유명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인한 신발을 가리킨다.

같은 디자인으로 대량 생산된 기존 살롱화에 비해 가격은 30%가량 높지만 감각 있는 색상과 독특한 디자인으로 요즘 젊은 여성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실장은 연세대 의상학과를 나와 1985년부터 10여년간 유명 남성 의류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구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의류 디자인을 하면서도 브랜드에 구색 맞춤으로 들어가는 구두가 있으면 생산 공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고를 정도로 구두를 좋아했다.

구두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1994년.디자이너로서는 가장 높은 직위인 디자인실장까지 지내고 나자 좀더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우선 직장을 그만두고 여러 사업 아이템을 찾던 중 출장 갔을 때 사귄 스페인 친구에게서 스페인 구두를 수입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워낙 구두를 좋아했던지라 흔쾌히 동의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이 실장은 "구두사업을 운영하는 방법부터 배운 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옷은 가위와 원단,그리고 미싱만 있으면 한 사람이 만들 수 있지만 구두는 모든 것이 분업화돼 있다.

구두 부자재만 해도 40~50가지인 데다 신발에 사용하는 접착제도 가죽에 따라 달라야 한다.

수제 구두의 공정은 200가지가 넘을 정도다.

구두 제작 과정에서 디자이너뿐 아니라 구두 기술자의 역할이 중요한 건 이런 까닭에서다.

원단에 관한 공부뿐 아니라 기술자들과 소통이 잘 됐는지의 여부도 좋은 구두를 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실장은 이 모든 과정들을 매달 스페인 현지 공장까지 찾아가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 써가며 조금씩 배워 나갔다.

하지만 구두 수입업자로만 지내기엔 디자이너로서의 욕심이 너무 컸다.

"제가 직접 디자인한 구두로 컬렉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구두 수입업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구두 디자이너로 변신해 국내 제화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그의 사업에도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업이 어려워지자 같이 일하던 직원들을 모두 내보냈다.

남의 공장 구석에서 몇몇 기술자들과 함께 만든 구두를 들고 구두 회사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차 주행거리는 하루 100km를 넘기기 일쑤였지요."

이 실장은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도 도저히 '구두'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신이 디자인한 구두가 기술자들의 우락부락한 손끝에서 태어나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미싱과 칼질이 섬세하게 오고가며 손바닥보다 조금 클 뿐인 구두가 모양을 잡아가는 모습을 보는 건 희열에 가까웠죠."

조그만 장식하나,바느질 하나에도 확연히 달라지는 구두 디자인의 맛을 알고 나니 사업이 힘들어도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다행히 기업들이 그때까지 검은색 위주의 단순한 디자인과는 다른 이 실장의 구두를 찾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업은 다시 안정됐다.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인 '슈콤마보니'를 만든 것은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서였다.

서울 청담동의 단골 커피숍이 있는 건물 1층 자리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거기서 영업을 하던 꽃집이 문을 닫은 것.

한 달 만에 부랴부랴 제품들을 준비해 가게 문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

패션업계에 종사하던 친구들이 이 실장의 신발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관련 업계에 소문이 퍼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 실장은 이제 한국의 구두 제작 기술은 이탈리아 못지않다고 자신한다.

문제는 구두 기술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점점 높아지는 반면 젊은 세대들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두 기술자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공정 비용은 더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디자이너 슈즈 브랜드들에 던져진 고민스런 숙제입니다."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사진=김병언 기자 misa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