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2억원에 은행 빚 2억원을 보태 4억원짜리 아파트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이제 물 건너 갔습니다."

올해로 중소기업에 몸을 담은 지 10년째인 김모씨. 그는 금융감독원이 3월부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강화한다는 뉴스를 전해 듣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새로 시행되는 DTI 규제는 아파트 담보대출 시 대출금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주의 연간소득 4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게 골자다. 연봉 4000만원인 직장인은 아무리 비싼 아파트를 담보로 맡기더라도 DTI 40% 한도인 1억5000만원(대출만기 15년,금리 연6.8% 가정 시) 정도 밖에 대출을 받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감독당국은 가계대출의 부실화 우려를 미리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투기적 대출수요를 틀어막아 수도권 아파트 값을 잡겠다는 목적이 더 강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무주택 서민·중산층이 집값이 더 뛸 것 같아 빚을 내 집을 사려는 것이 과연 투기일까. 지난 몇 년간 아파트 가격 상승폭은 대출이자를 커버하고도 훨씬 남는다. 빚을 내 아파트를 사지 않았던 사람들이 오히려 '바보'로 취급당하는 게 현실 아닌가.

이번 규제가 불러올 부작용은 이 뿐만이 아니다. 금감원의 홈페이지에는 사기를 당해 수천만원의 빚을 떠안아 신용불량자가 된 한 주부의 눈물 어린 호소가 올라왔다. 남편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아내의 빚을 갚으려고 했지만 투기꾼으로 몰렸다는 억울한 사연이다. 은행 상담 직원이 "투기목적으로 대출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해 배우자(아내)의 신용상태와 채무관계를 고려해 대출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대출신청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화가 난 남편이 "내 집 가지고 담보대출을 받는다는데 왜 규제를 받냐"고 따졌지만 은행 직원은 "금감원의 규정이 그래서 어쩔수 없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주부는 "투기의 '투'자도 생각할 여유가 없는 저로서는 대출을 받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는데 물거품이 됐다"며 울분을 토했다. 그는 "대출규제가 서민을 오히려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집값 잡는 것도 좋지만 서민 생각을 한번 해주십시오"라고 말을 맺었다.

장진모 경제부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