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재정위기를 경고하고 나선 것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위험요인을 고려한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보고서에서 KDI는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인한 재정수입 감소, 고령화에 따른 연금 및 의료비 등의 재정지출 수요 증가, 그리고 급격한 복지지출 수요 증가 등을 주요 위험요소로 꼽았다. 한국의 재정건정성은 아직까지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다고 강조하며 낙관론(樂觀論)으로 일관하고 있는 정부의 공식적 입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석이다.

한마디로 앞으로 들어올 수입은 기대에 못미칠 가능성이 큰 반면 나가야 할 지출은 예상밖으로 늘어날 위험성이 높다는 게 KDI 주장이다. 이는 설득력있는 전망으로 들린다. 2021~203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2%대로 내려간다는 것은 정부 스스로 장기비전에서 제시한 수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은 재정수입 증가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 진전으로 인한 연금, 의료비 지출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게 뻔하다는 점에서 상황을 결코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건 이에 대한 대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다. 각종 연금 등에 대한 개혁이 제때 이루어지면 좀 나을 수도 있을 텐데 이마저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앞장서서 각종 선심용 복지정책을 발표하고 시행하는 데만 골몰하는 인상을 주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예산계획도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은 '비전 2030'이 그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얼마 안가 재정에 엄청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KDI 보고서에서 눈여겨 봐야 할 점은 현재 30%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수준을 50%까지 늘린다고 해도 늘어나는 재정수요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가채무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는 정부가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더구나 우리의 국가채무 증가 속도는 매우 빠르다. 짧은 기간에도 크게 증가할 수 있고, 한번 늘어나면 줄이기 힘든 게 부채라는 점에서 안심은 금물(禁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작은 정부가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후세대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 있다. 선진국의 시행착오를 똑같이 반복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