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에서 대우건설 직원 9명이 납치됐다 풀려난 데 이어 17일 현대중공업 직원 한 명이 총상까지 입는 사고가 발생,해외 위험지역에서 일하는 국내 근로자들의 안전에 비상이 걸렸다.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국내 업체들은 유가 상승에 따른 건설특수를 겨냥,아프리카와 중동 진출을 확대하는 추세여서 안전대책 마련이 현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무장세력 출몰 잦아

이번에 현대중공업 직원이 피습당한 나이지리아 남쪽에 있는 섬 '보니 아일랜드'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출기지로 현재 대우건설 등 5개사가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현지법인이 몰려 있는 항구도시인 '포트 하커트(Port Harcourt)'에서 배로 1시간 이상 떨어져 있다.

포트 하커트와 보니 아일랜드를 잇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스피드보트다.

현대중공업 직원이 피습을 당한 것도 30인승 스피드보트다.

이 보트에는 통상 중무장한 사설 경비원이 탑승하지만,깊숙한 늪지대에 본거지를 둔 반군과 무장단체들이 수시로 출몰하면서 위협하고 있다.

개발 이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한 데다 오는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긴장이 한층 고조돼 무장단체들의 활동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현지에 나와 있는 국내 근로자들은 말라리아 등 풍토병과 열대 폭염보다 현지 '커뮤니티(부락)'와 반군이 더 위협적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곳의 커뮤니티는 부족장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마을 단위의 생활공동체로 나이지리아 중앙 정부조차 건드리지 못해 일종의 치외법권 지역이나 마찬가지다.

커뮤니티 대부분은 오랜 내전을 거치면서 기관총 등 고성능 화기로 중무장하고 있다.

포트 하커트와 보니 아일랜드만 해도 50개가 넘는 커뮤니티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에는 커뮤니티마다 자체 간이 검문소까지 세워놓고 통행료를 강제 징수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현지 직원들은 이동할 때 차량마다 각 커뮤니티로부터 돈을 주고 구입한 통행증을 덕지덕지 붙이고,반드시 총기로 무장한 사설 경비원을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일부 커뮤니티는 공사 현장의 직원 일부를 자신들의 부족원으로 채울 것을 요구하고,거부할 경우 납치 또는 공사 현장에 대한 총격도 서슴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전체 공사 기간 발생하는 문제의 50% 이상이 이들 커뮤니티와의 마찰 때문에 빚어진다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외 현장마다 테러위협 노출

해외 근로자들의 안전문제가 심각한 곳은 나이지리아뿐만이 아니다.

탈레반 반군이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에 진출해 있는 삼환기업은 현재 3건의 도로공사를 하고 있다.

현지 직원은 30여명으로 휴가자를 제외한 25명과 협력회사 유신코퍼레이션 직원 6명 등 30여명이 상시 근무한다.

삼환기업 공사현장은 아프가니스탄 북쪽지역으로 탈레반 반군이 준동하는 남쪽보다는 다소 안전하다지만,현지 무장세력들이 이따금씩 건설장비를 향해 총격을 가해 위험지역이기는 마찬가지다.

이에 대비해 삼환기업은 현장에 무장경비를 배치하고 있으며 이동할 때에도 무장한 경비원들을 대동한다.

또한 일몰 후에는 직원들의 외출을 금지하고 있으며 현지 경찰과 유엔 등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필리핀에서 바콜로드 신공항 건설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한진중공업의 현장 역시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 나라에서는 7100여개의 섬마다 크게 이슬람 반군 3개 조직과 공산 반군 2개 조직이 활동하고 있지만 중앙정부의 공권력이 미치지 못해 과격단체들의 납치,테러,무력 충돌 등이 자주 발생한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1월 말에는 현지공관과 합동으로 대테러모의 훈련을 실시하는 등 안전문제에 대비하고 있다.


○테러위협에 속수무책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 1월 현재 국내 건설 근로자 4863명이 57개 국가에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외교부가 여행을 금지 또는 제한하거나 주의를 요하는 나라로 꼽고 있는 이라크,나이지리아,태국,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스리랑카 등에 나가 있는 국내 근로자는 줄잡아 2800여명에 달한다.

국내 경기가 나쁜 데다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와 중동은 공사 규모가 워낙 대형이어서 기업들의 진출이 잇따르고 있지만,정부 차원에서 테러위협 등에 대해 뾰족한 대책이 없어 이들의 안전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문권·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