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에서 부사장직은 권한과 책임이 정확하게 비례하는 자리다.

일을 할 수 있는 재량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결과에는 엄중한 책임을 묻는다.

삼성전자의 경우 웬만한 기업 규모인 매출 1조원 안팎의 사업부를 이끄는 직책이기도 하다.

잘하면 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지만 같은 부사장군(群)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면 정상 일보 직전에서 물러나야 한다.

삼성은 이번 인사를 통해 30명의 새로운 부사장을 배출했다.

부사장 승진 인사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지난해는 15명,2005년에는 26명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미래 최고경영자(CEO) 후보군을 두텁게 함으로써 경영의 안정을 도모하고 상호 경쟁을 통해 조직의 활력을 진작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승진자들 가운데 연구·개발(R&D) 분야에서 눈에 띄는 인물은 메모리반도체사업부의 서강덕 부사장이다.

1979년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삼성전자에 입사,1기가 비트급 낸드 플래시메모리와 나노급 제품개발에 성공하는 등 세계 플래시메모리 기술을 선도해오면서 '낸드플래시 박사'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02년 상무-2004년 전무에 이어 3년 만에 부사장으로 올라서는 고속승진을 거듭하고 있다.

서 부사장은 2004년 삼성인 최고의 영예인 '삼성펠로우'로 선정되기도 했다.

반도체 총괄에서 P램 F램 등 '차세대 연구팀'을 이끌고 있는 김기남 부사장도 예비 CEO로 분류된다.

과거 1기가 D램 개발의 주역이었으며 항상 차세대 연구프로젝트만 수행한다고 해서 별명이 '차세대'다.

또 삼성코닝정밀유리의 이헌식 부사장은 국내 최고의 유리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브라운관용 유리에서 TFT-LCD용 기판유리에 이르기까지 '디스플레이용 유리' 기술개발에 매진해왔다.

별명도 '유리박사'다.

이 부사장은 삼성과 미 코닝사가 1980년대 말 LCD용 기판유리의 대량 생산 및 대형화를 위해 공동 착수한 '퓨전프로젝트'의 주역으로 참가하기도 했다.

일반 직군에서는 전략기획실 재무팀의 김상항 부사장이 돋보인다.

김 부사장은 재무팀에서 10년 이상 일하면서 삼성자동차 부실처리 등 그룹 내 굵직한 자금·금융 현안들을 원만하게 처리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업부의 전동수 AV사업부장도 주목 대상이다.

전 부사장은 과거 '디지털 컨버전스'의 기획업무를 맡아 사내에 관련 개념과 유용성을 전파하고 단위 총괄사업부 간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이끌어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새로운 디자인과 성능을 갖춘 MP3 신제품들을 많이 선보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정동수 부사장은 국내 최고의 조선소 운영 전문가로 불린다.

조선소 내 물류의 흐름과 도크배치 등을 최적화함으로써 선박 건조량 증대에 기여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삼성물산의 정기철 부사장은 CFO(재무부문 최고경영자)로 과거 구조조정본부 재무팀에서 다년간 일한 경력을 갖고 있고,상사 부문의 김관동·이철우 부사장은 유럽 본부장과 신수종사업 기획업무를 통해 과거 종합상사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앞장섰다는 평이다.

건설부문의 김종기·이호선 부사장 역시 국내 건축영업에서 두각을 드러낸 인물들로 수익력 향상에 기여했다.

조일훈 기자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