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6차 협상이 15일부터 재개될 예정인 가운데 협상에 참여하는 법률가들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양국이 첨예하게 맞붙고 있는 쟁점들이 협정 조문에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협상 결과와 국내 산업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협상에 참여 중인 국내 법률가들은 김영모 재경부 통상조정과장,외교통상부의 김원경 지역교섭과장과 유명희 서비스교섭과장 등 10여명에 달한다.

주력부대는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해외연수 기회를 살려 미국 로스쿨을 졸업한 '미국변호사'들이다.

옛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에서 공직을 시작한 김영모 과장은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통상법률 전문가다.

슈퍼 301조 관련,한·미 협상(1980년대)과 우루과이라운드(UR) 서비스 협상(1992~95년)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한 바 있는 그는 이후 하버드 로스쿨로 유학,이론적 토대도 쌓았다.

그는 "공무원 휴직이 최대 3년 동안 가능해 실무를 쌓기 위해 미국과 국내 로펌에서 근무했다"며 "FTA 협정문 자체가 법률문서이므로 법률 실무경험은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원경 과장은 외교부 내 미국변호사 1호다.

대부분의 외무공무원들이 해외유학 기회를 국제정치나 행정 분야에서 찾는 데 비해 김 과장은 일찌감치 로스쿨쪽으로 방향을 잡아 미국변호사가 됐다.

통상산업부를 거쳐 외교부에 몸을 담게 된 유명희 과장도 통상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률지식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로스쿨을 졸업했다.

국내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변호사 개업을 포기하고 외무공무원으로 임용된 이들도 있다.

외교부 서비스교섭과 안현주·이성범 사무관과 상품교섭과 이지형 사무관 등은 2005년 변호사 공채 1기로 임용돼 외교부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안 사무관은 "변호사로 개업한 사법연수원 동료들에 비해 월급 수준은 낮지만 국익을 위해 일하고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지형 사무관도 "국내 로펌의 입사권유도 받았지만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 통상분야를 택했다"며 "로펌에 들어간 동료들이 따분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 변호사로 전업할 생각은 없다"고 못박았다.

이들 법률전문가는 총칙 규제 서비스 등 법조문과 직접 관련 있는 분야에 집중 배치돼 협상에 임하고 있다.

법조문을 하나 하나 따지는 게 법률가들의 몫이다.

FTA 협상에 참여하는 미국측 인사들 역시 대부분 변호사들이라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김원경 과장은 "'불공정행위에 대해 조사한다'는 조문만 해도 영어의 조동사 'may'를 쓰느냐 'should'를 쓰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며 "법조문이 일단 영어로 작성되기 때문에 단어 하나에도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may'의 경우는 '조사할 수도 있다'는 양해 수준이지만 'should'의 경우 '조사해야 한다'는 강제의무가 부과된다.

상대적으로 개방정도가 덜한 한국의 입장에서는 'may'로 표현되는 게 유리한 입장이다.

해산물에 대한 원산지 규정을 마련할 때도 단순히 '한국산'이라고 해선 안된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은 200해리를,영해는 12해리를 규정하고 있어 법조문 단어 하나에 따라 영토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어서다.

이번 협상의 경우 아직까지는 실수가 없었지만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다고 한다.

1998년 한·일 어업협상에서 독도를 중간수역에 포함시킨 것이라든가,'쌍끌이' 어획량을 '외끌이' 어획량에 포함시키는 바람에 일본 수역에서의 쌍끌이 어획쿼터가 누락되는 등 실수를 연발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또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핵심 관건은 협상단 내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의 '조화'라고 입을 모은다.

법조문을 만들 때는 법률가들의 활약이 필요하지만 법조문에 담을 주요 내용을 확보하는 것은 협상가들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유명희 과장은 "경제산업에 대한 전반적 지식을 확보하고 있는 경제관료와 국제사회의 크고 작은 협상에 참여하는 외교전문가,법률에 대한 체계적 전문성을 확보한 법률가 등 3개 분야 전문가들이 협조해야 FTA협상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태웅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