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전철로 1시간30분 거리인 가나가와현 지카사키시에 있는 일본의 차세대 리더 양성소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일본식 정원이 잘 가꿔진 교정에는 일본인들로부터 '경영의 신'으로 존경받는 마쓰시다 고노스케의 동상이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연말 연시 어수선한 외부와 달리 일본의 미래를 위해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들의 강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학장 격인 세키 기요시 숙장(塾長·74)은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신뢰와 정직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인품과 교양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2001년부터 정경숙을 이끌고 있는 그를 지난달 28일 만나 리더십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대담=최인한 도쿄 특파원

-리더십을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학생들에게 무엇이라고 가르치나요.

"주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는 힘이라고 설명합니다.다른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마해야 합니다.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신뢰를 유지해 나갈 수 없기 때문이죠.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론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험을 통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신뢰가 확보된다는 것이죠.마쓰시다 고노스케는 다른 사람 얘기를 자기 것처럼 과시하지 말라고 항상 강조했어요.실제로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진정한 지식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계에 많은 리더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처럼 되기 위한 품성은 무엇입니까.

"우선 '정직'해야 합니다.최근 일본에서는 장관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지도층이 비리에 연루돼 물의를 일으키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려는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보다 훨씬 가혹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될 수밖에 없어요.정직하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그 사회는 불행해집니다.동양의 '무사도'나 서양의 '신사도'가 리더에게 필요하다고 하겠지요."

-시대가 변하면 요구되는 리더십도 달라지지 않을까요.

"기본은 변함이 없습니다.다만 과거와 달리 변화 속도가 빠르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격랑을 헤쳐 나가려면 '판단력'과 '실천력'의 중요성이 커졌다고 봐요.주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고 앞장서 위기를 돌파해 나가는 추진력이 필요합니다.다른 사람의 '지혜'를 빌리는 힘도 매우 중요합니다.정보와 지식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현대사회에서 아무리 유능한 리더도 혼자서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훌륭한 인재를 모으고 이들의 힘을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해요."

-일본사회에서는 정경숙 졸업장만으로 리더 소양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리더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지요.

"평소 임상철학(臨床哲學)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치려면 이론만으로는 안 되며 오랜 기간 환자를 돌보면서 겪은 경험이 필요합니다.리더 교육도 마찬가입니다.이론만으로는 훌륭한 리더를 키울 수 없어요.학생들이 스스로 체험하고 정리해 자신의 철학으로 내재화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체험하지 않은 지식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교육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현장과 역사 공부를 가장 중시합니다.교육 과정의 절반은 현장에서 스스로 체험하는 과정입니다.예를 들어 제조업이나 해외 시장의 중요성을 익히게 하기 위해 매년 전교생을 중국 마쓰시타전기 현지 공장에 보내 한 달간 근로자들과 똑같이 일하면서 배우도록 하고 있어요.또 하나는 역사 교육입니다.현대사회에서 리더가 되려면 자기 나라는 물론 외국 역사에 정통해야 합니다.국내외 유명 학자들을 초청해 역사 교육을 하는 등 많은 비중을 두고 있어요.이웃 나라인 한국 중국 등과 외교 마찰이 일어나는 것도 역사 인식 부족에 따른 것입니다.역사를 바르게 알아야 현실에 대처하는 식견을 가질 수 있어요."

-한국에서도 리더 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훌륭한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엘리트 교육을 강화해야 하지 않을까요.

"특별한 엘리트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리더에게 필요한 소양 교육은 다양한 채널을 통해 가능합니다.치열한 입시 경쟁에서 살아남는 식의 교육에는 반대합니다.시험 공부를 잘하는 것과 리더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대학 교수나 장관 등 엘리트층에서 각종 스캔들이 발생하는 것은 기본 교육이 잘못됐기 때문이죠.주변 사람들이 같이 일하고 싶어 하고 자발적으로 따라오게 만드는 지도자 자질을 키워주는 게 필요합니다."

-아베 신조 정권은 발족 3개월 만에 잇따른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습니다.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와 아베 총리의 리더십이 다른가요.

"아베 총리를 평가하긴 아직 일러요.고이즈미 전 총리는 분명히 리더십이 있는 지도자였습니다.그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분명하게 밝혔고 지속적으로 실천했어요.고이즈미 전 총리와 비교해 아베 총리는 주장이 불분명하고 방향이 자주 바뀌는 경향이 있는 게 차이점입니다.정치 지도자는 자신의 철학과 노선을 분명히 밝히고 실천해 평가를 받는 자세가 필요해요."

-기업의 리더인 최고경영자(CEO)는 정치 리더와는 다른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의 요체는 무엇인가요.

"세계 시장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려면 눈앞의 이익만을 좇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돈'만 벌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소비자에게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좋은(합리적) 가격에 제공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성공할 수 없어요.먼 장래를 내다보고 경영해야 합니다."

-일본 경제의 부활 과정에서 기업 리더들이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도요타 캐논 마쓰시타전기 등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자들이 불황 탈출에 기여한 것은 사실입니다. 기업이 강해야 국가 경제가 튼튼해진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요.그러나 구조조정 과정에서 종업원들과 국민들이 상당한 피해를 봤습니다.경영자들은 국민의 희생 속에 기업이 재생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해요.경기가 좋아진 만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합니다."

-한국은 경제성장 동력 약화와 정치 불안,노무현 대통령의 인기 추락 등으로 선진국 문앞에서 주춤거리고 있습니다.새로운 도약을 위해 어떤 리더가 필요할까요.

"글로벌 시대를 맞아 개방적 사고 방식을 가진 리더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한국만을 생각하지 말고 아시아와 세계사적 관점에서 한국의 지향점을 고민하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일본인 입장에서는 이웃 일본의 장점도 받아들여 한국 발전에 활용할 수 있는 '통 큰' 리더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올 12월 한국에서는 대통령 선거가 있습니다.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할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매우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이군요.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북한 핵실험으로 고조됐던 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해결하고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인물이면 좋겠습니다.한국은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고 영향력도 커졌어요.민족적인 시각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국민들의 감정을 이해하는 글로벌 감각을 지닌 대통령이 나오길 희망합니다."

-한국 기업의 리더들에게 해주실 말씀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존경받는 기업을 만들라고 주문하고 싶어요.돈을 벌기 위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 기업을 지향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옵니다.특히 삼성같이 앞서가는 기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요.더 많은 국내외 기업과 공존공영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하면 더 성장할 것입니다.도요타의 경우 수많은 협력 기업은 물론 지역 사회,국가 경제에도 많은 기여를 해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