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발발한 외환위기와 그후 10년은 우리나라 재계 지도를 완전히 새롭게 그려놨다.

물론 기업들은 언제나 명멸을 반복한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이후 10년 동안 진행된 재계의 지각변동은 이 같은 '일상적인 부침의 과정'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외환위기는 산업계에 메가톤급 외부 충격을 줬고,모든 그룹과 기업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이나 신사업 발굴에 나서야 했다.

당장 삼성 현대 LG그룹 등은 외환위기 직후 반도체 항공 철도차량 발전설비 등 7대 업종에 대해 '빅딜'이라 불리는 사업구조조정에 내몰렸다.

자동차 철강업계 등은 자발적인 인수·합병이 진행되기도 했고,건설 화섬업계에서는 부실기업이 대거 퇴출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1997년과 2006년.이 두 시점의 국내 30대그룹 명단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상전벽해'란 말을 떠올리게 된다.

10년 동안 30대 그룹의 명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기업은 현재 15개에 불과하다.

대우 쌍용 기아 한라 동아 진로 고합 등 나머지 절반의 그룹은 이제 역사속으로 사라졌거나 입지가 대폭 축소돼 있다.

특히 1997년 재계 4위였던 대우그룹은 1999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으로 해체되면서 우리 경제계에 엄청난 부담을 줬다.

이제 대우그룹은 없어졌지만,대우 계열사들은 M&A나 구조조정을 통해 거의 다 정상화 궤도에 진입해 있다.

대우자동차는 2002년 GM에 인수돼 GM대우차로 거듭났다.

옛 대우중공업에서 분할된 대우조선해양과 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에서 분할된 대우인터내셔널과 대우건설(2006년 금호그룹에 피인수)도 새 주인을 맞거나 정상화에 성공했다.

대우증권도 최근 수년 새 경영실적이 대폭 개선되면서 '증권 명가'로 부활했다.

대우전자의 우량 사업부문을 인수한 대우일렉트로닉스는 현재 매각작업이 진행 중이다.

그룹이 해체된 것은 아니더라도 상당수 그룹은 계열분리를 통해 재계의 판도 변화를 초래했다.

현대그룹은 2000년 이후 계열분리 수순을 밟았다.

정몽구 회장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현대제철(옛 인천제철) 등을 갖고 2000년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

이듬해에는 현대그룹이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면서 현대건설 하이닉스(옛 현대전자)가 대주주 지분 감자 등으로 그룹에서 분리됐다.

정몽준 의원 계열의 현대중공업도 2002년 초 독립,계열 분리했다.

결국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상선,아산 등을 주력으로 하는 중견그룹으로 위상이 축소됐다.

LG그룹은 구씨·허씨 동업가문의 분리로 전자·화학·통신만 남고 2004년 이후 유통·에너지·건설부문은 GS그룹으로,전선·동제련부문은 LS그룹으로 각각 계열 분리됐다.

외환위기 전에는 현대그룹과 재계 수위를 놓고 다퉜던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등 계열사의 경이로운 실적 개선을 토대로 부동의 1위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한신평정보에 따르면 삼성그룹의 자산총계는 1996년 말 47조원(금융계열사 제외)에서 2005년 말 100조원으로 배 이상 늘어났다.

주력사업이 근본적으로 바뀐 '환골탈태'형도 있다.

한화그룹은 화약 중심에서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하면서 금융 주력으로 변모했다.

맥주로 대표되던 식음료업종의 두산그룹은 2001년 이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대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중공업·건설 중심으로 재편됐다.

또 '뉴 페이스'들이 속속 등장,30대 그룹의 없어진 절반을 새로 채웠다.

공기업이 대표적이다.

포스코 KT 등은 민영화 과정을 거치면서 하루아침에 재계서열 10위권 안에 들어가는 '공룡'으로 떠올랐다.

일부 기업들은 M&A로 단숨에 재계 순위가 뛰어오르기도 했다.

진로를 인수한 하이트맥주,대동조선(현 STX조선)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등을 인수한 STX그룹 등이 그들이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