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이민은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많은 행복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주변을 둘러보면 섣불리 은퇴 이민을 갔다가 실패해 쓰린 가슴을 부여안고 '컴백 홈'한 사례도 적지 않다.

퇴직 후 치킨집을 운영하다 필리핀으로 은퇴 이민을 간 A씨가 대표적 경우다.

그는 지난해 초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다 은퇴 이민을 충동적으로 결심했다.

필리핀 마닐라 지역으로 불과 7일간의 답사여행을 다녀온 뒤 곧장 이주를 추진했다.

집을 급매해 필요자금을 마련했다.

은퇴 답사 가이드를 맡은 사람을 통해 빌리지 주택도 구했다.

처음 두 달간은 가정부와 운전기사를 두고 아무런 걱정 없이 꿈 같은 생활을 맘껏 누렸다.

골프장도 거의 매일 나갔다.

하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가이드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렌털 비용이 월 60만원에 불과한 집을 120만원에 계약한 사실을 주변 한국 사람들을 통해 들은 것이다.

필리핀어에 능통한 가이드가 주인과 짜고 금액을 높이는 대신 커미션을 챙긴 것이다.

자녀를 학교에 입학시키는 데 필요한 수수료로 200만원을 지불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공짜 입학이 가능했다.

차량 구입비도 100만원 이상 바가지 썼다.

가이드에게 이를 항의했지만 "킬러를 동원해 죽여 버린다"는 협박만 들었다.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생활비도 많이 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보다는 부유한 생활을 했지만 지출 규모가 예상액의 2배를 웃돌았다.

1년간 수입 없이 돈만 쓰던 그는 결국 귀국을 결심했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 보니 필리핀에 갈 때 급매로 팔고간 아파트 가격은 이미 2배로 뛰었고,전세금도 많이 올라 월세 신세로 전락했다.

충동적 결정,사전 준비 미흡,현지 언어 이해 부족,사기 등 은퇴 이민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실패를 경험한 그는 한국생활 기반마저 잃고 예순 나이에 바닥을 새롭게 다지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