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강점이 노골화되는 1902년 12월22일.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제물포항을 떠나는 증기선 갤릭호에는 104명의 이민자들이 승선했다.

풍전등화의 조국을 뒤로하고 신천지에서 새 삶을 펼쳐보겠다는 이들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잠시였고,이민자들을 맞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은 불볕더위와 장시간 노동,저임금뿐이었다.

멕시코 이민자들의 삶은 더욱 기구하다.

'지상천국'이란 말에 속아 1905년 멕시코 남단의 유카탄반도에 도착한 한인들은 살인적인 더위와 열악한 환경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선인장과의 일종인 '애니깽' 농장으로 끌려가 농장주의 가죽채찍 아래서 곡괭이질과 쟁기질 노릇을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들의 한(恨) 많은 이야기는 1980년대 비로소 연극무대에 올려지면서 알려지게 됐다.

한 많은 이민역사는 계속된다.

1960년대에는 광부와 간호사들이 독일로 대거 이주하면서 가난한 조국의 식구들을 먹여 살렸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한 호구지책(糊口之策)의 해외이주였던 셈이다.

유학이민과 투자이민이 줄을 잇는 지금의 추세에서 보면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최근에는 장·노년층의 이민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들은 주로 동남아 국가를 선호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필요한 노후자금의 절반이면 상류생활을 할 수 있어서라고 한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정실과 지연에 얽힌 부담을 덜고 치열한 경쟁의 스트레스를 벗어날 수 있으니 그 홀가분한 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다.

이들을 두고 '은퇴이민''웰빙이민'이라 하는데 일본에서는 '연금이민'이라 해서 오래 전부터 붐을 이루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민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이다.

그렇지만 해외생활은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

또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탓이다.

현실이 못마땅하다고 피안(彼岸)의 세계를 동경하다가 곤욕을 치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쨌든 이민은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은 또 하나의 선택이다.

박영배 논설위원 youngb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