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한화갑(韓和甲) 대표가 22일 의원직을 상실함에 따라 당분간 현실 정치무대에서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백의종군하겠다고 말했지만 한 대표는 대표직은 물론 당원자격까지 상실하게 됨으로써 `야인'으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지난 1968년 김대중(金大中.DJ)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지 근 40년만에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것.

특유의 전라도 말씨와 힘주어 말할 때 손을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동작이 김 전 대통령을 빼닮아 `리틀 DJ'로 불려온 한 대표의 퇴장은 정치인 한화갑의 시련을 뛰어넘어 그가 속해있던 동교동계라는 이너서클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교동계란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시절 동교동 자택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던 비서출신들을 일컫는 말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와 함께 양김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DJ의 분신',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불렸던 권노갑(權魯甲) 전 고문을 비롯해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최재승(崔在昇) 설훈(薛勳) 윤철상(尹鐵相) 전 의원 등 이른바 `가신그룹'과 DJ의 장남인 김홍일(金弘一) 전 의원이 동교동계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한 대표는 이 가운데서도 동교동계로는 보기 드물게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이라는 `뛰어난' 학벌 때문에 초기에 가신그룹에 연착륙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동교동계는 `국민의 정부' 시절 정권의 막후 실력자이자 집권당의 실세그룹으로 군림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열린우리당 창당, 참여정부 출범과 함께 `구시대의 인물'로 몰리며 조락의 길을 재촉당했다.

이들은 2004년 4.15 총선에서 불어닥친 `탄핵풍'으로 대거 낙선의 고배를 마셨고, 그나마 살아남은 한 대표와 김홍일 전 의원 마저 각각 정치자금법과 선거법 위반이라는 암초에 걸려 의원직을 상실한 것.

사실 동교동계의 쇠락은 열린우리당 창당주역인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 신기남(辛基南), 천정배(千正培) 의원(천신정)의 정풍운동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동교동계의 좌장격인 권 전 고문이 옛 민주당 시절 `천.신.정'의 인적쇄신 요구에 밀려 2000년 12월 `순명(順命)'이란 말을 남기고 최고위원직을 사퇴, 2선 퇴진을 강요당한 것.

이후 정치적 기반을 상실한 권 전 고문은 평당원으로 지내다 2003년 8월 현대측으로부터 대북사업 지원대가 등의 명목으로 20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속되면서 사실상 정치생명을 마감했다.

이어 동교동계 의원들은 옛 민주당 분당사태와 열린우리당 창당 과정을 거치며 `분당파'에 맞서 싸우겠다며 4.15 총선에 일제히 도전장을 던졌으나 `탄핵풍'에 휘말려 대거 낙선했다.

이 과정에서 범동교동계로 분류되는 안동선(安東善), 이윤수(李允洙), 이훈평(李訓平), 조재환(趙在煥), 배기운(裵奇雲) 전 의원 등도 탄핵풍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 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