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悳煥 < 서강대 교수·과학커뮤니케이션 >

서울대의 이병천,김대용 교수팀이 암캐의 복제에 성공했다고 한다. 무려 세 마리의 복제 암캐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핵 이식(移植)의 방법을 획기적으로 개선했고,복제 성공률도 25%에 이른다고 한다. '스너피'의 경우 성공률이 0.8%에 지나지 않았던 것만 생각하더라도 이번 성과가 훌륭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인 모양이다. 같은 연구팀이 늑대도 성공적으로 복제했다고 한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우선 이번 소식은 연구진의 일방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점에서 반갑다. 복제 사실을 객관적으로 증명해주는 완벽한 유전자 검사 자료까지 갖춘 공식적인 학술 논문들이 국제 학술지의 심사를 통과했고,이제 게재가 확정됐다는 것이다. 논문이 발표될 학술지가 '사이언스'나 '네이처'가 아닌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술적 성과로 인정받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를 마친 셈이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 이외에는 아무 흔적도 찾을 수 없는 '영롱이'나 아직도 공식적인 학술 논문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스너피'의 경우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성과라는 뜻이다.

더욱이 이번 성과는 이병천 교수가 어려운 역경을 이기고 일궈낸 것이라는 점에서 남다르다. 모두가 기억하듯이 이 교수는 작년 우리 사회 전체를 나락으로 추락시킨 황우석 연구진의 핵심 멤버였다. 참아내기 어려웠을 신분상의 징계까지 받았던 이 교수에 대한 사법적 절차는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서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고,훌륭한 성과까지 거두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자라를 보고 놀란 가슴은 솥뚜껑을 보고도 놀라는 법이다.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이 교수의 모습에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단순히 논문의 내용을 설명하는 수준을 넘어선 그의 발언이 문제였다.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었던 이 교수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신중했어야 한다. "다른 개의 복제도 가능하다"는 주장은 어느 누구도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과 같은 질병을 갖도록 형질을 변화시킨 개를 질병 모델 동물로 양산(量産)하는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희망도 일반에게 가볍게 공개할 내용은 아니었다. 과연 인간을 위한 질병 모델 동물로 개를 이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으로 확인된 사실도 없고,그런 연구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없다. 그런 희망은 전문가들이 검토할 '연구계획서'에서나 적절한 것이다.

과학자는 본래 전문 분야의 학술지와 학술회의를 통해 자신의 성과를 발표하고,연구계획서를 통해 자신의 꿈을 제시해야 한다. 모든 과학자가 사회에서 관심을 가질 훌륭한 성과를 이룩하거나,장밋빛 꿈을 생각해낼 때마다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말 좋은 성과와 장밋빛 희망은 과학자가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사회에 알려지게 마련이다. 훌륭한 연구 성과를 찾아내서 사회에 알리는 것은 언론의 책임이고,미래의 꿈 같은 기술 예측은 앨빈 토플러와 같은 미래학자들의 몫이다.

언론도 조금 더 냉정해야 한다. 이제는 기억조차 하기 싫은 황우석 사태의 모든 과정에서 언론의 책임이 절대 가볍지 않았던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세계 최초'와 '세계 최고'를 앞세워 과학적으로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을 과장해서 보도했던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이제 언론은 우리 모두를 위해 그런 구태(舊態)에서 확실하게 벗어나야 한다.

개와 늑대를 복제했다고 우리가 '동물 복제 강국'이 되는 것도 아니고,'BT 코리아'의 저력이 확인된 것도 아니다. 개와 늑대가 동물 복제의 가장 어려운 대상이고,동물 복제가 BT의 핵심 과제라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성과가 훌륭한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우리 사회에 남겨진 황우석 사태의 아픔이 모두 씻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 교수의 재기를 조용히 지켜보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