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장하성펀드와 대립각을 세워온 태광그룹이 결국 장펀드의 요구를 대폭 수용키로 했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일명 장하성펀드)가 태광산업 대한화섬 경영진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합의 내용은 △이호기 회장 부자가 소유한 유선방송 계열사 지분을 태광산업으로 환원하고 △유휴 자산의 활용계획과 사업계획을 수립해 내년 중 발표하며 △2009년까지 유선방송 사업 지주회사 신설을 통해 그룹 소유구조를 투명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장펀드에서 추천한 사외이사를 한 사람씩 선임키로 했다.

또 감사 독립성 강화,윤리경영 선포,별도 IR팀 신설을 통한 배당정책 수립 등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 일가가 가진 티브로드 천안방송 지분 67%는 태광산업으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먼저 티브로드 중부방송 지분 17.6%를 태광산업에 넘기고 이후 중부방송과 천안방송을 합병하는 방식을 택할 방침이다.

대한화섬 지분 5.15%를 가진 장펀드가 55%를 가진 최대주주 일가로부터 사실상 '백기투항'을 받아낸 셈이다.

업계에서는 태광측이 이처럼 태도 변화를 보인 것과 관련,최대주주 일가의 유선방송 계열사 취득 과정이나 대출 과정에서 의혹이 잇달아 제기된 데 따른 부담감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이날 증시에선 자산주들이 다시 들썩였다.

장펀드의 후속 종목에 대한 소문이 증권가에 퍼지고 '주주권익'을 표방한 경영 참여 사례가 잇따르는 등 '지배구조' 테마가 증시를 뒤흔들었다.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은 가격제한폭까지 치솟았으며 장펀드 매수 종목인 크라운제과도 6% 넘게 올랐다.

동원개발 동부한농 벽산건설 한국화장품 대한제강 등 그동안 장펀드의 매입 후보군으로 꼽히던 종목들도 일제히 급등세를 나타냈다.

동원개발의 경우 장펀드를 운용하는 라자드운용측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지분율이 탄탄한 태광그룹이 장펀드의 요구에 꿈쩍도 안 할 것'이라며 일회성 테마로 치부하던 투자자들도 태광그룹이 전폭적인 변화를 수용하자 관련주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표방하는 사모·공모 인수·합병(M&A)펀드나 사모투자전문회사(PEF)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올해 경영 참여 가능성을 제기하며 수익률 끌어올리기에 나섰던 사모M&A펀드 못지않게 내년에는 공모 M&A펀드가 활개칠 것으로 전망된다.

박동명 굿모닝신한증권 연구원은 "올해 PEF와 M&A펀드 유입 자금은 전년 대비 4배가량 늘어났다"며 "투자자들이 앞으로 M&A펀드나 PEF를 '한국형 소버린'이나 '한국형 아이칸'으로 생각하고 M&A 테마 좇기에 나설 가능성이 크지만 성공모델이 아직 없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M&A펀드나 PEF 외에 개인투자자나 기업이 주주 권익과 M&A 가능성을 내걸고 차익을 노리는 사례도 늘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 M&A 전문업체 이사인 안태일씨가 기업 재평가를 통해 주주권익을 높이겠다며 코스닥 상장사인 라셈텍 70만주(5.00%)를 매수한 후 경영 참여를 선언한 것이 그 예다.

일각에선 펀드자본주의와 주주행동주의의 과잉으로 기업의 경영 자율성이 한층 저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편 장 교수는 "대한화섬 태광산업 외에 현재 보유 중인 10여개 종목 가운데 연말까지 1~2종목에 대해 지분 보유를 공시할 방침"이라며 "2~3년 내에 일반 공모 등을 통해 펀드 규모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