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인조 시절 어우당 유몽인(柳夢寅)이 쓴 어우야담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서애 유성룡(柳成龍)이 군의 총책인 도체찰사를 맡고 있을 때다. 하루는 각 고을에 공문을 보낼 일이 있어 역리를 시켜 발송토록 했다. 사흘 후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닫고 회수하라고 지시했더니 즉각 공문이 되돌아왔다. 유성룡이 화가 나 "왜 공문을 보내지 않았느냐"고 꾸짖었더니 역리가 이르기를 "속담에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이라는 말이 있어,소인의 생각으로 사흘 후면 다시 고칠 것 같아 보내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성룡도 할 말을 잊었을 수밖에 없다.

나라의 정책이나 고관나리들의 지시가 얼마나 자주 바뀌었으면 이런 일까지 벌어졌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조선공사삼일이라는 말도 그 기원은 고려공사삼일(高麗公事三日)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이고 보면 정책의 조변석개(朝變夕改)는 참으로 뿌리가 깊었던 모양이다.

옛말 틀리지 않다고 했던가. 고려공사삼일은 요즘 세태를 들여다봐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는다. 대표적인 게 입시제도다. 엊그제 대입수능점수가 발표됐지만 수험생이나 학부모들은 혼란스럽기가 짝이 없다. 원점수다 표준점수다 백분위율이다 등급이다 해서 따져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거기다 내신점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고 대학마다 점수반영 방법도 다른 까닭에 지원대학을 선택하기는 박사 논문을 쓰는 것 만큼이나 어렵다. 더욱이 수능 제도나 학교별 전형방법 자체도 툭하면 바뀌는 형편이니 혼란상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괴롭히자고 작정한 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변화가 심할 수 있을까 싶다.

부동산 정책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투기를 잡겠다며 내놓은 대책들이 올해만 해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주택청약제도가 수시로 바뀌고, 아파트 용적률 건폐율도 오락가락이다. 양도세 종합부동산세 등록세 취득세 같은 세제 또한 변경되기 일쑤다. 은행대출마저 담보인정비율(LTV)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이다 하며 적용기준이 수시로 바뀌니 내집마련을 위해 장기 계획을 세우기는 애초에 불가능에 가깝다.

국책사업의 경우도 다를 게 없다. 용산미군기지를 2008년 평택으로 이전하겠다더니 느닷없이 2012년 이후로 늦추겠단다. 미국과의 합의 지연 등이 이유라고 하지만, 정부 발표를 믿고 개발계획을 진행하거나 투자에 나섰던 지자체와 주민들은 예기치 않은 인적·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하게 됐다. 행정수도이전을 추진하다 위헌 판결을 받고 결국 반쪽에 그친 것 역시 섣부른 업무추진의 전형에 다름아니다.

졸속으로 결정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정책으로 인해 국민들이 겪는 혼란과 국력의 낭비가 얼마나 심한지는 새삼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땜질식 임기응변 정책은 날이면 날마다 되풀이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정말 이제는 우선 벌여놓고 보자는 한건주의, 어려운 상황은 대충 넘기고 보자는 적당주의에서 벗어나 꼼꼼한 계획을 바탕으로 일관성 있게 정책을 밀고나가는 모습을 보여달라. 고려공사삼일이란 말이 우리 민족성을 대표하는 말로 자리잡게 될까 두렵다.

이봉구 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