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의 사채업자나 다름없는 론스타에게 외환은행을 팔아놓고선…."

지난 몇개월간 A검사의 말투는 늘 이런 식이었다.

재경부나 변양호 당시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이 화제에 오를 때면 입에 거품을 물곤 했다.

A검사는 대검 중수부의 론스타 수사를 보강하기 위해 지난 6월 파견된 특수수사 베테랑이다.

대검찰청을 출입하는 기자로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노회한 중수부 수사기획관의 선문답 같은 브리핑보다야 수사진행의 속사정을 읽어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수사담당자와 따로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연히 출퇴근 길에 만나면 슬쩍 한마디씩 건네는게 전부다.

그와 마주친 것은 3번.그 때마다 그는 분노를 굳이 감추지 않았다.

"비겁하게 다른 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외환은행 실사도 하기 전에 론스타와 가격협상을 해놓고선 짜맞추기 한 것 아니냐 말이야"라며."2003년 외환은행 매각계약은 원천무효가 될 수도 있다"는 강한 자신감이 곁들여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수사는 꼬이기만 했다.

결국 지난 7일 발표된 중간수사결과는 뭔가 아귀가 안맞는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론스타와 공모해 최대 8252억원이나 싸게 외환은행을 매각한 '주범'인 변 국장에게 돌아온 몫이란 고작 4174만원.여기에는 그랜저 승용차를 구입하면서 로비스트인 하종선 변호사로부터 20%할인받았다는 내용도 포함돼있다.

재경부장관 0순위 후보에다 하룻밤 술값 수백만원은 우습게 아는 자리에 있던 변국장이었다.

그런 그가 기껏 수천만원의 유혹에 론스타에 넘어갔다는게 9개월여 검찰수사의 결론이라니.알 만한 사람은 코웃음을 칠 일이다.

성역없는 수사로 변 국장의 윗선을 밝히든지, 무혐의 처리를 했어야 하지만 검찰의 자존심이 이를 허용할리 만무하다.

그러다보니 애꿎은 변국장이 대타로 '몸통'이된 어정쩡한 성과물이 나온 것이다.

그나마 변국장의 혐의도 제대로 밝히지 못해 법원에 신청한 구속영장은 죄다 기각됐다.

수사결과 발표자리에 핏기 하나없이 파리한 얼굴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던 A검사의 심정이 가히 짐작이 가고도 남는 대목이다.

검찰의 무능을 탓하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하수종말처리장처럼 온갖 의혹을 캐내야 하는 검찰로서도 답답할 노릇이다.

아직 재판절차도 남아있다.

심정적으로야 투자원금의 몇배를 챙겨갈 론스타가 곱게 보일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있겠는가.

'소신'에 따른 판단이었다고는 하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은 아니꼽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이 당시 경제상황을 도외시한 채 '사후잣대'라는 함정에 너무 쉽게 빠져드는 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처음부터 무리한 수사였다"는 뒷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사실 사후잣대 만큼 편리한 도구도 없다.

결과만 보고 잘잘못을 따지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검찰이 사후잣대의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경제계는 고스란히 그 불똥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사행성 게임비리 의혹사건이나 제이유그룹 비리의혹 사건도 검찰의 의도와는 달리 자칫 게임산업과 다단계산업의 씨를 말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어서 하는 말이다.

김병일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