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달러화에 대한 원화가치 급등(원·달러환율 급락)으로 수출업체들의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중국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고 공동으로 자국 화폐가치를 더 절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예상된다.

가와이 마사히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지역경제통합실장은 7일 "미국 달러화의 추가 하락은 불가피하며 이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은 집단적인 평가절상(collective joint appreciation)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DB가 아시아 국가들에 화폐를 절상하라고 공식 의견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각국 정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

가와이 실장은 "미국의 경상적자가 줄어들기 위해서는 달러가치가 주요국 화폐에 대해 추가로 30~40% 떨어져야 한다"며 글로벌 불균형의 시정을 위해서는 동아시아 국가 통화의 추가 절상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들이 동시에 함께 절상된다면 20% 정도까지 절상되더라도 수출 경쟁력이 크게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시아 어느 국가도 대미 수출 비중이 전체 수출의 2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달러가치가 추가로 20% 하락해도 동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블록으로 동시에 움직인다면 교역 가중치를 감안한 실제 절상폭은 4%(20%의 2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 정도 절상의 충격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따라서 인위적인 시장 개입으로 외환보유액을 늘려 아시아 통화당국이 스스로의 손발을 묶을 것이 아니라 각국이 자국 통화의 움직임을 다른 통화와 연동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훨씬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경제학자들은 그러나 중국과 한국 등이 실제 집단으로 화폐를 절상하기 보다는 제각기 절상 추세를 막거나 속도를 늦추기 위한 노력(시장개입)을 기울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시장에서 수출 경쟁력이 너무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다.

절상 추세를 막기 위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력은 이들의 외환보유액이 3조달러를 넘어선 데서 알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각자 자국 통화가 너무 오르지 않도록 달러를 사들이고 있다는 얘기다.

외환 전문가들은 동아시아 통화의 집단 절상을 주장한 ADB의 논리가 달러 가치의 질서있는 하락을 위해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각국의 상충된 이해관계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홍콩의 증권사인 CFC 세이머의 애널리스트 다리우즈 코왈지크는 "언제 얼마만큼의 달러를 팔아야 하는지 각국이 협의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 동아시아 국가들은 무역 문제 등에 협력하고 있지만 통화정책까지 손발을 맞추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8일부터 필리핀 세부에서 열리는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 재무장관들의 회담에 주목이 쏠리고 있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아세안+한·중·일 정상회담에서도 이 같은 아시아 국가들 간 환율 공조가 논의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선태 기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