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 기행] (16) 마산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수녀원 ‥ 자기존재 밑바닥을 들여다 보세요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커다란 공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흰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생산라인에 서서 한창 작업 중이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라인을 타고 잼을 담은 병이 도착하면 상표를 붙이고 포장하느라 옆에 누가 왔는지 쳐다볼 겨를도 없다.
작업 중인 사람들은 모두 수녀.하지만 머리 전체를 덮은 작업복 모자 밑으로 살짝 드러난 베일만 수녀임을 나타낼 뿐 언뜻 봐선 여느 공장 노동자와 다름없다.
마산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의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한번 들어가면 평생 바깥 출입을 삼가는 완전봉쇄 수도원이다.
'주님을 섬기기 위한 배움터'라는 글이 새겨진 정문을 지나 30m가량 산언덕을 오르자 '친환경 트라피스트잼'이라는 표지판 아래 붉은 벽돌로 장식한 공장 건물이 보인다.
공장은 7월에 준공된 새 건물로 딸기,귤,포도,무화과를 잼으로 만드는 전 과정의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
그런데 왜 수도원에서 잼 공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잼을 만드는 것은 수행의 방편이자 생계를 위한 수단이며 세상과 연대하는 통로입니다.
수도자의 노동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소량 생산으로는 판매처를 찾기가 어려워 지난 7월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공장을 새로 지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겨서 고민이에요."
공장을 안내하던 수녀원장 장혜경 요세파 수녀의 말이다.
자동화 설비 때문에 잼을 하루 2500~3000병씩 만들 정도로 대량생산은 가능해졌으나 공장을 한번 가동하면 중간에 멈추기가 곤란하다는 것.하루에 일곱 번씩 성당에 모여 공동기도를 해야 하는 수녀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루 종일 생산라인을 지키고 서 있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잼 공장은 일주일에 이틀만 가동한다.
공장 가동 전날에는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가동 다음날엔 판매처로 발송하는 작업이 뒤따르므로 쉬는 날이 없다.
트라피스트수녀원이 잼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경,빵,수의,이콘 등 여러 가지를 시험한 끝에 유기농 과일로 잼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드는 잼은 딸기,무화과,포도,귤 등 네 종류.우리농촌살리기운동 마산교구본부를 통해 연결한 유기농 생산자로부터 재료를 공급받아 잼을 만든다.
수녀원에는 잼 공장 외에도 봉쇄구역 안에서 이뤄지는 청소,식사준비,빨래,이콘·묵주·과자·카드·양초 등 기념품 만들기,재봉,밭일 등 일거리가 많다.
오후 4시40분.하루의 노동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수도원에 울려퍼지자 각자의 일터에서 속속 수도원의 중심인 성당으로 모여든다.
5시10분 시작되는 저녁기도와 묵상을 위해서다.
성당은 100여평 규모로 널찍한 편인데,격자 모양의 분리대가 수도자를 위한 봉쇄구역과 일반 신자를 위한 개방구역으로 성당 내부를 구분한다.
수녀 한 명이 제대 앞으로 나가 종탑에서 길게 드리워진 줄을 당겨 '뎅,뎅,뎅' 하고 종을 울리면서 기도는 시작된다.
기도 후에 이어지는 15분간의 묵상 시간.성당의 모든 불이 꺼지고 제대 뒷편 벽의 성모자상만 조명을 받는 가운데 침묵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1098년 프랑스의 성 로베르토,성 알베리코,성 스테파노 등 세 명의 아빠스(대수도원장)들이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기반으로 창설한 시토회는 유럽 전역에 900여곳의 수도원을 지닐 만큼 번성했다.
그러나 17~18세기경 창설 정신이 쇠퇴하자 프랑스 트라프 지역을 중심으로 규칙을 엄수하려는 쇄신운동이 일어났고,이런 수도원들을 엄률시토회,그 수도자들은 발상지의 이름을 따 트라피스트라고 불렀다.
한국에는 1987년 일본 트라피스트회의 안젤라 수녀가 현 위치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진출했다.
"성 베네딕도의 규칙을 따르는 저희들의 생활은 새벽 3시30분 기상에서부터 저녁 8시 취침하기까지 기도와 독서,그리고 노동이 전부입니다.
왜 봉쇄수도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너무나 단순한 우리의 삶을 보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문어발처럼 뻗어 있는 갈망 속에서 살고 있는데 기도와 독서,노동의 단순한 삶을 통해 자기 존재의 밑바탕을 살펴보면 그런 갈망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음을 보게 되지요.
그 자리에서 갈망들은 하나의 방향을 지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봉쇄구역 바깥의 '피정의 집'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만난 장 요세파 수녀는 수도생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스텔라·장 리디아·홍 엠마누엘 등 3명의 수녀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람들이 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요세파 수녀는 "욕심과 똥으로 가득한 자기 모습을 보면 남의 탓을 하던 손가락이 자기를 향하게 된다"며 "자기 존재의 바닥을 보고 나면 미워서 꼴 보기 싫은 동료도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런 체험이 있어서일까.
수녀들은 한결같이 명랑하고 활기차다.
"수녀들은 침묵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 없을 거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침묵도 잘해요.
대화와 침묵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지 침묵만 있으면 숨 막혀서 어떻게 살아요?" "노동이요? 힘들지요.
여름에 무장공비 같은 차림으로 수도원 입구 쪽에서 풀베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보시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요새도 이런 일을 직접 하는 수도자가 있느냐는 말씀이셨지요.
그보다 더한 일도 하는데요,뭘.나무도 베고 풀도 뽑고 길도 만들고….'인간 포크레인'이라고 할까,호호호."
수도원에 들어온 지 25년 됐다는 요세파 수녀는 "수도원 생활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했다.
새벽 3시30분.기상 벨소리가 어둠과 정적에 잠긴 수도원을 깨운다.
곧이어 시작된 새벽기도 시간.27명의 트라피스트 수녀는 이렇게 기도하며 행복의 길을 닦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자동으로 돌아가는 라인을 타고 잼을 담은 병이 도착하면 상표를 붙이고 포장하느라 옆에 누가 왔는지 쳐다볼 겨를도 없다.
작업 중인 사람들은 모두 수녀.하지만 머리 전체를 덮은 작업복 모자 밑으로 살짝 드러난 베일만 수녀임을 나타낼 뿐 언뜻 봐선 여느 공장 노동자와 다름없다.
마산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가량 걸리는 마산시 구산면 수정리의 '시토회 수정의 성모 트라피스트 수녀원'.한번 들어가면 평생 바깥 출입을 삼가는 완전봉쇄 수도원이다.
'주님을 섬기기 위한 배움터'라는 글이 새겨진 정문을 지나 30m가량 산언덕을 오르자 '친환경 트라피스트잼'이라는 표지판 아래 붉은 벽돌로 장식한 공장 건물이 보인다.
공장은 7월에 준공된 새 건물로 딸기,귤,포도,무화과를 잼으로 만드는 전 과정의 자동화 설비를 갖췄다.
그런데 왜 수도원에서 잼 공장을 운영하고 있을까.
"우리가 잼을 만드는 것은 수행의 방편이자 생계를 위한 수단이며 세상과 연대하는 통로입니다.
수도자의 노동은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노동에 너무 치우쳐서는 안 되지요.
그렇다고 소량 생산으로는 판매처를 찾기가 어려워 지난 7월 자동화 설비를 갖추고 공장을 새로 지었더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겨서 고민이에요."
공장을 안내하던 수녀원장 장혜경 요세파 수녀의 말이다.
자동화 설비 때문에 잼을 하루 2500~3000병씩 만들 정도로 대량생산은 가능해졌으나 공장을 한번 가동하면 중간에 멈추기가 곤란하다는 것.하루에 일곱 번씩 성당에 모여 공동기도를 해야 하는 수녀들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루 종일 생산라인을 지키고 서 있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잼 공장은 일주일에 이틀만 가동한다.
공장 가동 전날에는 재료를 준비해야 하고 가동 다음날엔 판매처로 발송하는 작업이 뒤따르므로 쉬는 날이 없다.
트라피스트수녀원이 잼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995년부터.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안경,빵,수의,이콘 등 여러 가지를 시험한 끝에 유기농 과일로 잼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여기서 만드는 잼은 딸기,무화과,포도,귤 등 네 종류.우리농촌살리기운동 마산교구본부를 통해 연결한 유기농 생산자로부터 재료를 공급받아 잼을 만든다.
수녀원에는 잼 공장 외에도 봉쇄구역 안에서 이뤄지는 청소,식사준비,빨래,이콘·묵주·과자·카드·양초 등 기념품 만들기,재봉,밭일 등 일거리가 많다.
오후 4시40분.하루의 노동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수도원에 울려퍼지자 각자의 일터에서 속속 수도원의 중심인 성당으로 모여든다.
5시10분 시작되는 저녁기도와 묵상을 위해서다.
성당은 100여평 규모로 널찍한 편인데,격자 모양의 분리대가 수도자를 위한 봉쇄구역과 일반 신자를 위한 개방구역으로 성당 내부를 구분한다.
수녀 한 명이 제대 앞으로 나가 종탑에서 길게 드리워진 줄을 당겨 '뎅,뎅,뎅' 하고 종을 울리면서 기도는 시작된다.
기도 후에 이어지는 15분간의 묵상 시간.성당의 모든 불이 꺼지고 제대 뒷편 벽의 성모자상만 조명을 받는 가운데 침묵으로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1098년 프랑스의 성 로베르토,성 알베리코,성 스테파노 등 세 명의 아빠스(대수도원장)들이 성 베네딕도의 수도 규칙을 기반으로 창설한 시토회는 유럽 전역에 900여곳의 수도원을 지닐 만큼 번성했다.
그러나 17~18세기경 창설 정신이 쇠퇴하자 프랑스 트라프 지역을 중심으로 규칙을 엄수하려는 쇄신운동이 일어났고,이런 수도원들을 엄률시토회,그 수도자들은 발상지의 이름을 따 트라피스트라고 불렀다.
한국에는 1987년 일본 트라피스트회의 안젤라 수녀가 현 위치에 수도원을 세우면서 진출했다.
"성 베네딕도의 규칙을 따르는 저희들의 생활은 새벽 3시30분 기상에서부터 저녁 8시 취침하기까지 기도와 독서,그리고 노동이 전부입니다.
왜 봉쇄수도를 하느냐고 묻는다면 너무나 단순한 우리의 삶을 보라고 얘기합니다.
바로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문어발처럼 뻗어 있는 갈망 속에서 살고 있는데 기도와 독서,노동의 단순한 삶을 통해 자기 존재의 밑바탕을 살펴보면 그런 갈망이 자신을 옭아매고 있음을 보게 되지요.
그 자리에서 갈망들은 하나의 방향을 지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느님입니다."
봉쇄구역 바깥의 '피정의 집' 식당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시 만난 장 요세파 수녀는 수도생활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스텔라·장 리디아·홍 엠마누엘 등 3명의 수녀도 자리를 함께 했다.
사람들이 다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지만 막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기적이고 이중적인 존재라는 것.요세파 수녀는 "욕심과 똥으로 가득한 자기 모습을 보면 남의 탓을 하던 손가락이 자기를 향하게 된다"며 "자기 존재의 바닥을 보고 나면 미워서 꼴 보기 싫은 동료도 사랑스럽게 볼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그런 체험이 있어서일까.
수녀들은 한결같이 명랑하고 활기차다.
"수녀들은 침묵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말이 없을 거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 침묵도 잘해요.
대화와 침묵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야지 침묵만 있으면 숨 막혀서 어떻게 살아요?" "노동이요? 힘들지요.
여름에 무장공비 같은 차림으로 수도원 입구 쪽에서 풀베기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스님 한 분이 보시더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요새도 이런 일을 직접 하는 수도자가 있느냐는 말씀이셨지요.
그보다 더한 일도 하는데요,뭘.나무도 베고 풀도 뽑고 길도 만들고….'인간 포크레인'이라고 할까,호호호."
수도원에 들어온 지 25년 됐다는 요세파 수녀는 "수도원 생활이 정말로 행복하다"고 했다.
새벽 3시30분.기상 벨소리가 어둠과 정적에 잠긴 수도원을 깨운다.
곧이어 시작된 새벽기도 시간.27명의 트라피스트 수녀는 이렇게 기도하며 행복의 길을 닦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