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5차 협상이 성패 여부를 가를 분기점을 앞두고 있다.

무엇보다 무역구제 분과에서 우리 측이 5가지 요구사항을 선별 제시, 6일까지 가부 답변을 달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번 5차 협상이 애초 예상되로 한미 FTA의 성패를 가를 '분수령'이 된 것이다.

국경 간 거래 허용대상 보험중개업 범위 등 일부 진척은 있지만 쇠고기를 비롯한 농산물 시장 개방 확대, 의약품, 임시 세이프가드 등 쟁점 현안들이 아직 쌓여있다.

서로의 의견은 이미 충분히 들었고 결단이 필요한 시점을 앞두고 있다는 게 협상장 주변의 관측이다.

◇무역구제 최후통첩 '강수'
우리 측 협상단이 무역구제 현안을 풀기 위해 가부 답변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우리 측이 이번 5차 협상에서 무역구제를 최대의 목표로 삼고 있었던 만큼 어느 정도 예상은 됐지만 강수를 둔 셈이다.

백두옥 무역구제 분과장은 "그동안의 14개 요구사항 중 반덤핑 관련 5가지를 선별, 미국 측에 제시하면서 내일 오전까지 답변을 달라고 요구했다"며 "미국이 이 제안을 받지 않으면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측이 선별 제시한 5가지 요구는 ▲양국 간 무역구제위원회 설치 ▲반덤핑 조사 때 사전통보와 협의 ▲산업피해 판정 때 국가별 비합산 ▲반덤핑 혐의 때 사전 가격 및 물량조절(서스펜션 어그리먼트) ▲팩트 어베일러블(반덤핑 자료조사시 이용가능한 자료로 판정) 등 5가지다.

이중 무역구제위를 제외한 4가지는 오는 6월 말 종료되는 무역촉진권합법(TPA)상 6개월 전에 의회에 통고할 필요성이 있는 사항으로 우리 정부는 보고 있으며 가장 중시하는 항목은 덤핑에 의한 산업피해 평가 때 한국산은 제외하는 국가별 비합산이다.

미국 측은 이날도 수용불가 입장을 고수, 최후통첩을 순순히 받아들일지는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다.

다만, 양측이 사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협상장 주변에서 제기되고 있다.

실제 웬디 커틀러 미국 측 수석대표는 전날 기자회견에서 무역구제와 관련, "서로 믿음을 갖고 논의하기로 했다"며 "논의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차차 협상을 진행하면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해 무역구제는 FTA의 협상대상이 아니라는 예전 입장보다 한발 물러난 모습을 보였다.

◇ 자동차, 도로 제자리
자동차는 이번 5차 협상에서 미국의 새로운 대안제시 가능성이 감지되면서 일부 진척이 기대됐던 품목이다.

하지만 자동차 협상은 "의회의 변화로 자동차에서 특별한 검토가 있을 것"이라는 웬디 커틀러 미국 수석대표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다시 어두워진 데 이어 이날 분과회의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전혀 진척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상품무역분과를 맡고 있는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은 "한국이 자동차 관세의 조기 철폐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관세 철폐와 한국이 자동차 세제 개편을 연계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며 "미국은 관세철폐 일정도 제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애초 한국은 미국이 세제 개편과 관련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 일단 내용을 확인한 뒤 입장표명은 유보한다는 복안이었으나 현재까지 상황으로는 이런 전략은 별다른 소용이 없게 됐다.

◇ 금융.투자분야, 보험 일부만 진척
금융.투자분야에서는 미국이 첫날 회의에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FTA 협정 적용 여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공세수위를 높인데 이어 이번에는 임시 세이프가드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날 열린 금융, 서비스, 투자분과 합동회의에서 한국 측이 금융위기 때 자본거래와 송금을 일시 제한하는 임시 세이프가드의 도입 필요성을 거론하자 미국 측이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많은 점을 이유로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금융업 국경 간 거래(국내 영업거점 없이 이뤄지는 금융거래)에서는 자산운용사가 위탁받은 자산을 다시 한국에서 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우리 측이 난색을 표명해 접점을 찾는데 실패했다.

아울러 보험 부수업종의 국경 간 거래도 미국이 특정분야를 명시하지 않은 포괄적 개방을 요구한 반면, 한국은 이를 손해사정업과 보험계리업에만 한정한다는 입장을 밝혀 이견 사항으로 남았다.

그러나 보험중개업체에 대한 수출입 적하보험과 선박보험, 항공보험(우주보험 포함), 재보험(재재보험 포함)의 국경 간 거래 허용, 소비자 보호를 위한 양국 정부.금융당국 간 협정체결에는 양측이 합의해 일부 진전을 이뤘다.

◇ 농산물 '피곤'. 의약품 '정말 어려워'
우리가 공격을 당하고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농산물과 의약품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전망이 불투명한 분야다.

농업분야는 그동안 비민감 품목만 다뤄왔으나 5차 협상부터 민감 품목을 다뤄 4일 식량작물(옥수수, 밀, 대두 등)에 이어 5일에는 축산물과 과일류를 서로 협의했다.

쇠고기 뼛조각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 측의 통상압력이 거센 가운데 진행되는 농업분과 회의에서 양측은 6일까지 모든 민감품목에 대한 협의를 마칠 계획이나 품목별로 구체적인 관세철폐나 감축 방안 등 결론을 내리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쇠고기 등 주요 농산물의 양보는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한 사항들이어서 향후 고위급 회담의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날 가장 고통을 당한 분야는 미국 측의 공세가 가장 심했던 의약품이다.

전만복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장은 "입장차가 너무 커 합의점을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의약품은 커틀러 대표가 "한국은 갈 길이 멀다"고 돌출 발언을 할 정도로 미국 측의 불만이 큰 분야다.

선별등재(포지티브리스트) 등 건강보험 약가 적정화 방안의 시행을 앞두고 미국 측은 우리의 무역구제처럼 빨리 답변을 내라고 닦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 측은 건강보험 약가 적정화 방안과 관련, 외국 신약의 선별 등재과정에서 최저가격을 보장하고 약품 허가를 둘러싼 신약과 제네릭의 차별을 없애달라는 입장이며 국내외 제약사 간 차별요소 등을 거론하면서 한국의 보건당국에 대해 불신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고 있다.

"정말 힘들다"는 게 의약품 분야를 담당하는 우리 측 협상단의 반응이다.

(빅스카이연합뉴스) 경수현 김종수 기자 evan@yna.co.krjsking@yna.co.kr